칠성의 도축장

제1막: 낯선 봄의 이방인

by조삿갓

장터의 소란스러운 흙먼지와 군홧발 소리를 등지고, 일행이 황급히 몸을 숨긴 곳은 성내리 외곽 후미진 곳에 자리한 칠성의 도축장(屠畜場)이었다.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눅눅한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수십 년간 스며든 짐승의 피와 내장의 악취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무쇠 갈고리들은 어둠 속에서 흉측한 이빨처럼 번뜩였고, 방 한가운데 놓인 참나무 도마 위로는 금방이라도 날것의 살점이 튀어 오를 듯했다.


평범한 양민들이라면 그 비릿한 공기에 헛구역질하며 도망쳤을 터이나, 불과 일주일 뒤 제국주의의 총칼 앞에 맨몸을 던져야 할 자들에게 이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완벽하고 은밀한 은신처였다.


"그래, 니가 백 년 뒤의 세상에서 온 후손이라고?"


쾅-!


칠성이 피 묻은 발골도를 나무 도마 한가운데에 거칠게 내리찍었다. 쇳덩어리가 단단한 나무의 결을 파고드는 무자비한 파열음이 지하실의 습한 공기를 날카롭게 찢었다.


"상투 짤린 꼬라지나 입고 있는 헝겊때기 보아하이 우리 조선 사람은 아이고, 말하는 뽄새는 왜놈들 앞잡이가 분명한데... 지사님, 참말로 이 미친놈의 헛소리를 믿으시는 깁니꺼!"


칠성의 탁한 두 눈에는 짐승 같은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구석에 선 연화 역시 치마폭을 꽉 틀어쥔 채, 사색이 된 얼굴로 진우와 정규하를 번갈아 보았다.


정규하는 피투성이 도마 앞의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맑고 깊은 동공은 진우를 향해 있었으나, 섣불리 칠성의 흥분을 가라앉히거나 진우를 변호하려 들지 않았다. 혈육이라는 압도적인 직감으로 이 기이한 청년을 거두긴 하였으나, 이성적인 유학자로서 그가 토해낸 비현실적인 미래의 증거들을 두 눈으로 명백히 확인하고 납득해야만 했다.


진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도마에 박힌 칼날의 서늘한 은빛이 진우의 망막을 예리하게 찔렀다. 2026년의 세상에서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진우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자신이 이 시대의 인과율을 비틀어 조상의 피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이 우악스러운 백정을 자신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벼려내야만 했다. 진우는 천천히 나일론 재킷의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말씀드렸듯, 저는 밀정이 아닙니다. 다가올 참혹한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후손일 뿐입니다."


진우의 손에서 검고 매끄러운 직사각형의 금속 덩어리가 빠져나왔다. 배터리 잔량 34퍼센트. 진우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의 측면 버튼을 깊게 눌렀다.


파앗-


순간, 칠흑 같던 도축장의 지하실 안으로 차갑고 창백한 인공의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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