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다는 말의 폭력성에 대해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by대낮

최근에 읽은 태고 작가님 글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나는 이것을 이혼 이야기로 읽지 않았다.


돌싱이란 타이틀이 내게 붙었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의외로 주변 사람이었다. 친구는 내 앞에서 일찍이 파투 난 내 결혼생활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었다. 네 감정은 이런 거였잖아. 그러니까 이렇단 거잖아.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상하다 대꾸할 힘도 의욕도 없었다. 자기가 더 심각했다. 내 결혼생활에 대해 왜 자기가 다 얘길 하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그랬는지 내 얘기를 들을 생각은 없고, 자기가 그냥 내 결혼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는 친구 앞에서 무력감이 들었다.
그냥 뭐라고 하는지 계속 듣고 있었다.
나조차도 아직 정리가 안 된 나의 결혼에 대해서 이 친구가 뭐라고 하는지를.
끝날 때쯤 문득 보았더니 내가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설득당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현타가 왔다. 네가 이혼을 두 번 하든 세 번 하든 넌 그냥 너일 뿐이라는 파와 자기가 뭐라도 한 의견 거들고 싶어서, 평가에 훈수를 더해 한마디 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대는 유형으로 주변은 홍해 갈라지듯 쭉 갈라졌다. 그 홍해 앞에 나는 서 있었다.


원문:

https://fishingproductfr.com/@taego/36


나라면 어느 쪽이었을까. 아마도 "네게 무슨 일이 있었어도 너는 너야"라고 말하는 부류일 듯하다. 그러나 그 말을 내가 듣는 입장이었다면 과연 그 말에 수긍할 수 있었을까. 이 문장을 곱씹으면서 평소 더 깊지 못했던 내 태도가 후회스러웠다. 안타깝게도, 얕은 위로는 얕게 전해진다. 위로가 아닌 방식으로.

알 것 같아. 이해해. 그럴 수 있지라는 말로는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덮어 놓고 하는 말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들. 어떤 위로의 문장도 현실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지가 않아서 위로받기 어렵다는 사람들. 사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어중간한 말들은 어떤 상황에 빠져 허우적대는 내게 조금도 닿지 못했다. 그러나 입장이 바뀌면 달랐다. 나 역시 "이해해" 한 마디로 덮으려 하고, "그럴 수 있어" 한 마디에 상대가 훌훌 털고 일어서길 바랐던 것 같다. 태고 작가의 이 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게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단정하는 말, 안 가봤지만 알겠다는 말은 의미 없는 말 같다. 위로는 섣불리 결론짓는 말보다 먼저, 상대를 살펴보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비로소 닿는다는 걸 이제 조금 알겠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선생님은 어떤 옷을 입고 출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