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날 소유하기를 원한다
나는 그에게 나를 주고 싶어 한다
그 관계에서 소유란 약속된 절차이며 으레 그러한 관계
그는 날 해치기를 원한다
나는 그가 주는 고통을 원한다
그는 나의 복종을 원하지만 동시에 반항을 기뻐하고
나는 그의 소유권에 항복하지만 동시에 더 깊은 소유를 원한다
그렇다면 이 속에서 거머쥘 영광은 누구의 것일까
어떤 이들에게 복종이란
삼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의미심장하거나 뻔한 씬
혹은 종교적이며 폐쇄적인 비상식적인 것
그들에게 복종이란 단어가 재미없고 몰상식한 것만큼이나
나에게 그들은 색도 없고 향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
그러므로 내 세계는 온통 흑백이었다
가끔 누군가에게서 색깔을 발견하면
그 색깔이 정말 그에게서 나오는 색깔인지
아니면 내 외로움이 빚어낸 허상인지를 가늠하느라
눈을 게슴츠레 뜨고선
호흡조차 가지런히
그대 누굴까, 하고선
그러므로 내 세계는 온통 흑백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회색의 희끄무레한 것이 방을 비추이고
밖으로 나가면 하얗거나 까만 그림자가 인사하고
아무 맛 나지 않는 것을 먹고
아무 향 나지 않는 것을 맡고
나는 살아간다 살아간다 살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독히도 외로웠다
그는 날 소유한다
나는 그에게 종속된다
그는 나에게 권리를 부여한다
나는 그 권리를 누린다
그것은 오직 복종할 권리
그와 나의 관계는 색채, 빛깔, 밝고 맑음
향이 있다면 달고 뭉근한 것이 오래도록 남아
씻어도 씻어지지 않고
곁을 맴돌다가
어느 때에든지 들이마실 수 있는 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