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은 대부분 제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거절을 받으면 제가 뭘 틀렸는지부터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늘 맞는 건 아니라는 걸 꽤 오래 걸려서 알게 됐는데요. 혹시 예전의 저처럼 거절 하나에 하루가 가라앉는 분이 있을까 싶어 그동안의 기록을 꺼내어 공유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거절은 대부분 제가 틀려서라기보다 '지금은 아니다'라는 뜻이더라고요. (참고로 지금은 회사에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영업을 하면 제일 자주 듣는 말이 거절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답장이 안 오고, 짧게 괜찮다는 말이 돌아옵니다.
1.
처음 몇 달은 거절이 올 때마다 속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도 실패구나, 이분과는 인연이 없구나. 명단 옆에 거절이라고 적고 다음 줄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엔 꼭 제 탓을 찾았습니다. 첫 문장이 너무 길었나, 너무 일찍 연락했나, 제 말투가 부담스러웠나. 이유를 찾으면 조금 나아질 것 같았는데, 찾을수록 제가 거절당한 것 같은 기분만 커지더라고요. 거절이 쌓인 날엔 또 거절당할까 봐 다음 연락을 자꾸 미뤘습니다. 그렇게 미루다 보면 명단은 그대로인데 마음만 무거워졌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저는 거절 하나하나를 제 점수처럼 세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몇 번 거절당했는지가 제가 얼마나 못하는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숫자라고 생각했으니까요.
2.
생각이 바뀐 건 거절했던 분들 쪽에서 먼저 연락이 오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몇 달 전에 지금은 괜찮다고 하셨던 분이, 이제 한번 이야기해 보자고 먼저 물어 오시는 거예요. 그분들 사정은 그사이에 바뀌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늘었거나, 하던 방식이 버거워졌거나, 그냥 그때가 바빴던 거였습니다. 제가 첫 문장을 잘못 써서 거절하신 게 아니었더라고요. 상대는 아직 준비가 안 됐고, 저는 그냥 조금 일찍 찾아갔던 거고요. 그래서 거절하신 분들을 명단에서 지우지 않고 남겨 두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뒤에 조용히 안부를 묻는 정도로요. 대단한 제안 대신 "요즘은 어떠세요?"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3.
그렇다고 거절에서 배울 게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절을 제 탓으로만 읽지 않게 되니까, 진짜로 고칠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거절을 받으면 같은 방식으로 다시 연락하고, 또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거절을 질문으로 바꿔 보니 조금 달라졌습니다. 꼭 이 방법이어야 할까, 다른 방식으로 다가갈 수는 없을까. 예를 들면 제 설명이 길어서 거절당한 게 아니라, 상대가 궁금한 걸 제가 먼저 묻지 않아서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거절을 제 점수로 셀 때는 안 보이던 거였습니다. 너무 틀에 박힌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죠.
4.
제일 크게 바뀐 건 거절을 들은 다음의 제 말입니다. 예전엔 서운한 게 목소리에 묻어났고, 조금이라도 더 설득해 보려고 말이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짧게 인사하고 돌아서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필요하실 때 편하게 연락 주세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 때 이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항상 여유가 중요하다고 많이들 말하잖아요? 이런 게 여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거절을 이렇게 받아 보려고 합니다. 1) 그날 바로 제 탓을 찾지 않고 하루는 그냥 둡니다. 2) 명단에 거절 대신 <지금은 아님>이라고 적습니다. 3) 같은 방식으로 다시 연락하기 전에 다른 길이 없는지 한 번 물어봅니다. 4) 돌아설 때는 짧게 인사하고 끝냅니다. 물론 지금도 거절 하나에 마음이 꺼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하루를 통째로 내주지는 않습니다. 제 하루는 소중하니까요.
거절당한 건 제가 아니라 그날의 제안이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거든요.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