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투사 (投射, Projection) 된 것을 받는 법
내담자가 나에게 무언가를 던질 때가 있다.
말이 아닐 때도 있다. 무거운 침묵일 때도 있고,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함일 때도 있고, 상담이 끝나고 나서 나에게 남는 이상한 기분일 때도 있다.
처음 이런 경험을 했을 때 나는 그것이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예민한 것이거나 잘못 보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담자가 나에게 무언가를 투사(投射, Projection) 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전환점이었다. 내 문제로 보는 것과 내담자의 투사로 보는 것이 다르다. 전자는 내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후자는 내담자의 것을 이해해야 한다.
투사된 것을 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이 일의 중요한 부분이다. 받지 못하면 내담자와 진짜로 만나지 못한다. 받아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을 함께 볼 수 있다.
이것이 쉽지 않다. 내담자의 것이 들어오면 내가 불편해진다. 무거워진다.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면 방어하게 된다. 방어하면 내담자의 것이 들어오지 못한다. 담아주기가 되지 않는다.
그 불편함과 함께 있는 법을 지금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때로 매우 중요한 정보다. 내가 무거워진다는 것이 내담자가 감당하고 있는 무게에 대한 신호다.
— 담아주기 —
이 경험을 반복하다가 비온의 컨테이너 개념에서 내가 하고 있던 일의 이름을 찾았다.
영아는 생의 초기 단계에서 공포, 혼란, 분노와 같은 강렬한 정서 경험을 스스로 이해하거나 처리할 수 없다. 이때 양육자는 영아가 투사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컨테이너의 역할을 수행한다(신애자, 2026: 176). 양육자는 영아의 감정을 단순히 반응하거나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견디고 숙고하며, 정서적으로 소화 가능한 형태로 변형하여 다시 영아에게 돌려준다(신애자, 2026: 176).
견디고 숙고하고 변형하여 돌려준다. 이 세 단계가 담아주기다. 상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내담자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 투사한다. 나는 그것을 받는다. 견딘다. 그리고 내담자가 받을 수 있는 형태로 돌려준다.
엄마가 아기에게 하는 것과 같다. 아기가 울 때 엄마는 그 울음을 받는다. 그 울음이 무엇인지를 자신 안에서 느끼고 이해한다. 그리고 아기가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그 과정이 아기의 혼란을 진정시킨다.
브론스타인이 이 개념을 교정했다. 컨테이닝(담아주기)은 종종 잘못 이해된다. 내담자를 견디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아니다. 컨테이닝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능동적인 감정적 과정이다(브론스타인, 2019: 326). 내가 내담자의 것을 수동적으로 담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것을 받아서 내 안에서 처리하고 변환하는 과정이 담아주기다.
이 과정이 잘 작동하면 내담자는 자신의 감정이 파괴적이지 않으며 생각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신애자, 2026: 176). 혼자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 나를 통해서 생각 가능한 것이 된다.
— 베타 요소와 알파 기능 —
베타 요소는 개인이 경험하는 감각적 정서적 자극 가운데 아직 의미화되거나 사고로 변환되지 못한 원초적 심리 요소다(신애자, 2026: 177). 의미화되지 못한 것. 내담자가 화가 나 있다. 그런데 왜 화가 났는지 말할 수 없다. 무엇이 불안한지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이 베타 요소다. 아직 생각으로 변환되지 못한 날것의 경험.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 어떻게 하는가. 행동으로 표현한다. 나에게 투사한다. 이것이 언어 이전의 소통이다. 말 이전에 이미 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
알파 기능이 이것을 변환한다. 알파 기능은 베타 요소를 상징화 표상화하여 꿈, 상상, 기억, 사고와 같은 알파 요소로 변환하는 기능이다(신애자, 2026: 177).
브론스타인이 임상 사례로 이것을 보여준다. X양이라는 환자와의 분석에서 브론스타인은 한동안 혼란을 겪었다. 환자가 말하는 내용과 무관하게 엄청난 궁금증이 생겼다. 통상적인 분석적 의미의 궁금증이 아니었다. 혼란을 느꼈다. 그런데 환자는 혼란스럽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 그 환자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강박적인 도착적 환상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분석가에게 투사하고 있었다. 환자의 베타 요소가 분석가 안에서 낯선 호기심이라는 알파 요소로 변환된 것이었다(브론스타인, 2019: 33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