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스강 위에서 만난 두 개의 런던

말로 지은 이야기, 돌로 세운 권력



Whan that Aprill with his shoures soote…
4월, 달콤한 봄비가 땅을 적실 때…
-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런던의 4월, 길모퉁이에서 잠시 멈춰 중세 영어로 쓰인 초서의 서문을 떠올린다.


600여 년 전, 봄비가 메마른 뿌리로 스며들던 계절, 사우스워크(Southwark)에서 캔터베리를 향해 길을 나섰던 순례자들의 행렬을 그려본다. 그들은 어떤 기대와 설렘을 품었을까.


역사는 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말한다. 그보다 300여 년 앞선 1066년, 왕관을 향해 이 도시로 다가오던 정복자 윌리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템스 강 위를 천천히 도는 런던 아이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거대한 시계처럼 도시를 내려다본다.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에서는 붉은 타탄 킬트에 허리 앞 스포런을 찬 남자가 백파이프를 연주한다. 끊이지 않는 백파이프 선율에 오래된 이야기가 실려 온다. 한참 그 자리에 머문다.


다리 아래로 템스강이 흐른다. 강 북쪽에는 왕실과 정치의 중심인 웨스트민스터가, 남쪽에는 여관과 시장, 훗날 극장이 모여든 사우스워크가 펼쳐진다. 강은 그 사이로 수백 년의 시간을 품고 흐른다.


그 둘 사이를 걷는다. 돌로 세운 권력의 흔적과 말로 지어진 이야기의 자취를 따라.



템스강을 배경으로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에서 백파이프 연주하는 사람



사우스워크, 백성의 목소리가 문학이 된 거리


템스강 남쪽의 사우스워크(Southwark)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던 거리였다. 중세 런던 시의 경계 밖으로 성장한 사우스워크에는 선술집과 여관, 유흥과 오락의 공간들이 모여들었다. 훗날에는 극장과 곰싸움장 같은 대중 오락시설도 자리 잡았다.


그 이야기의 한가운데 타버드 여관(Tabard Inn)이 있었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는 여러 신분과 직업을 가진 순례자들이 이 여관에 모인다. 기사와 수녀원장, 상인과 방앗간 주인, 시골 신부가 캔터베리를 향해 길을 나서며 차례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초서는 왕과 영웅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를 문학 속으로 불러들였다.



<캔터베리 이야기> 의 순례자들이 출발한 Tabard Inn 여관은 사우스워크 골목에 , 지금의 테이트 모던과 런던 타워 사이에 위치했었다.



초서와 셰익스피어, 사우스워크에 쌓인 이야기


그로부터 약 200년 뒤, 같은 사우스워크에는 또 다른 이야기의 무대가 세워졌다. 1599년, 템스강 남쪽 뱅크사이드(Bankside)에 글로브 극장(The Globe Theatre)이 문을 열었다. 셰익스피어의 극단이 세운 원형극장이었다.


1613년 《헨리 8세》 공연 도중 무대 효과에 사용한 대포에서 불이 나 극장이 전소되었다. 이듬해 다시 세웠지만, 1642년 의회의 극장 폐쇄 명령으로 문을 닫았다.


수백 년이 흐른 1997년, 셰익스피어 글로브(Shakespeare’s Globe)가 원래 극장에서 멀지 않은 템스강변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 앞을 관객과 여행자들이 오간다.


초서와 셰익스피어. 시대는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를 이야기로 남겼다. 수백 년 뒤에도 사우스워크의 문화는 이어진다. 강변의 옛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는 2000년 테이트 모던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렇게 서민의 일상과 문화가 쌓인 오래된 사우스워크를 뒤로하고 템스강을 건넌다.



1997년, 셰익스피어 글로브(Shakespeare’s Globe)는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어 지금도 관객들을 초대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돌로 새긴 왕권


강 건너는 전혀 다른 런던, 웨스트민스터다.


지금은 웨스트민스터 다리(Westminster Bridge)를 건너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오랫동안 템스강의 남쪽과 북쪽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성장했다.


남쪽 사우스워크에 여관과 극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였다면, 강 건너 웨스트민스터에는 왕궁과 사원, 국가의 제도가 자리 잡았다.



웨스트민스터 다리 건너면 보이는 영국 국회의사당(Palace of Westminster, Houses of Parliament)과 시계탑, 빅벤(Big Ben)



말로 이야기를 만들어온 도시와 돌로 권력을 세워온 도시.


영국 의회가 자리한 건물은 웨스트민스터 궁전(Palace of Westminster)이다. 중세에는 왕궁이었고, 지금은 상원과 하원이 모이는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그 기원은 중세 왕실 궁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대부분은 1834년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건축가 찰스 배리(Charles Barry)와 오거스터스 퓨진(Augustus Pugin)의 설계로 고딕 리바이벌 양식의 새로운 의사당이 세워졌다.


그 곁에는 런던의 시간을 상징하는 시계탑이 솟아 있다. 우리가 흔히 ‘빅벤(Big Ben)’이라 부르는 탑의 정식 명칭은 엘리자베스 타워(Elizabeth Tower)다. ‘빅벤’은 정확히 말하면 그 안에 있는 거대한 종, Great Bell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사우스워크에서 템스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의사당(Palace of Westminster, Houses of Parliament)이 보인다.



의사당 바로 옆에 자리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의회 건물이 아니라, 영국 왕실의 대관식과 깊은 역사를 함께해 온 교회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왕관이 기다리는 곳


1066년 크리스마스, 정복왕 윌리엄은 바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했다.


헤이스팅스의 전쟁터에서 시작한 길이 배틀과 도버, 캔터베리를 지나 왕관 앞에 이르렀다. 이제 윌리엄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들어간다.



버킹엄 궁(Buckingham Palace) 근위병 교대식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모습을 짧은 15초 라이브 영상으로 담았다.



버킹엄궁 근위병 교대식을 15초 영상으로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