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스팅스 이후, 윌리엄의 행군을 따라
도버(Dover)의 하얀 백악절벽 아래로 영국과 유럽 대륙을 가르는 도버 해협이 펼쳐진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은 30여 킬로미터에 불과하다.
On the French coast the light
Gleams and is gone;
프랑스 해안의 불빛이
반짝이다 사라진다.
- Matthew Arnold, 「Dover Beach」(1867)
19세기 영국 시인 매슈 아널드(Matthew Arnold)는 〈도버 해변(Dover Beach)〉에서 달빛 아래 도버 해협의 풍경을 노래했다. 맑은 날이면 바다 건너 칼레(Calais) 부근의 해안까지 보인다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한동안 해변에 머문다.
잉글랜드 남동부 켄트(Kent)의 항구 도시 도버는 고대부터 수많은 침공과 방어, 외교와 교역이 교차했던 곳이다. 영국과 유럽 대륙을 잇는 관문이었고, 도버성이 훗날 ‘영국의 열쇠(Key to England)’라 불린 것도 이러한 지리적 중요성 때문이었다.
천 년 전 이 바다는 한 왕국의 운명을 가르는 경계였다.
1066년 에드워드 참회왕(Edward the Confessor)의 죽음 뒤 벌어진 왕위 다툼은 잉글랜드 왕 해롤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과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William of Normandy)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도버가 아닌 페번시, 선택한 상륙지
1066년 9월 27일 밤, 프랑스 생발레리쉬르솜(Saint-Valery-sur-Somme)을 떠난 윌리엄의 함대는 영국 해협을 건너 이튿날 아침 잉글랜드 남부에 상륙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곳은 도버가 아니라 서쪽의 페번시 만(Pevensey Bay)이었다. 도버의 백악절벽(White Cliffs of Dover)은 바다와 맞닿아 수직으로 솟아오른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자연이 세운 거대한 성벽이다.
이 절벽은 수백 년 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King Lear)》에도 등장한다. 눈먼 글로스터가 절망 끝에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하자, 아들 에드거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평평한 땅을 절벽으로 믿게 했다. 절벽 중턱에 매달려 바위틈에서 자라는 식물 샘파이어(samphire)를 채취하는 사람까지 묘사하며 아버지를 속인다.
Hark, do you hear the sea?
들어보세요. 바닷소리가 들리십니까?
- Shakespeare, King Lear, Act IV, Scene 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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