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스데이 북에서 대관식까지, 천 년의 시간을 걷다
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
왕관을 쓴 자는 편히 잠들지 못한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4세 2부(Henry IV, Part 2)》, 3막 1장
커다란 원형 장미창 아래로 뾰족한 아치가 이어지고, 첨탑들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정교한 석조 장식이 정면을 채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헤이스팅스에서 시작해 배틀, 도버, 캔터베리를 거쳐 내가 따라온 길의 끝이다.
1066년 크리스마스, 윌리엄은 바로 이곳에서 잉글랜드의 왕관을 썼다.
그런데 그가 왕관을 쓰게 될 이 사원을 세운 사람은 다름 아닌 에드워드 참회왕이었다. 에드워드가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자 잉글랜드의 왕좌를 둘러싼 싸움이 시작되었고, 윌리엄 역시 왕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바다를 건너와 이곳에 이르렀다.
에드워드는 기존 수도원을 대대적으로 재건해 거대한 석조 사원을 세웠다. 새 사원은 1065년 12월 28일 봉헌되었지만, 그는 병으로 봉헌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불과 며칠 뒤인 1066년 1월 5일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헤이스팅스에서 해럴드를 무찌른 윌리엄이 에드워드가 세운 바로 그 사원에서 잉글랜드의 왕관을 썼다. 에드워드의 무덤도 있는 이곳에서 왕관을 쓴 것은 자신이 그의 정당한 후계자라는 윌리엄의 주장과도 맞닿았다.
정복의 시작점에 있었던 앵글로색슨 왕의 성전에서 정복자가 새로운 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날의 대관식마저 평화롭지 않았다.
환호가 불길로 번진 대관식
대관식에서는 잉글랜드인과 노르만인 모두에게 윌리엄을 왕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물었다. 사람들이 큰 소리로 동의를 외치자 사원 밖을 지키던 노르만 병사들은 그 함성을 소요가 일어난 것으로 오해했다. 병사들은 주변 건물에 불을 질렀고, 사람들이 사원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대관식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의식은 계속되었다. 불과 소란 속에서 윌리엄은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 정복에서 통치로
왕관은 썼지만, 윌리엄에게는 전쟁으로 차지한 왕국을 실제로 통치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잉글랜드의 토지와 권력 구조는 크게 재편되었고, 앵글로색슨 지배층의 상당수는 노르만 귀족들로 교체되었다. 성곽과 교회가 세워지고 왕을 중심으로 새로운 통치 질서가 자리 잡았다.
정복은 전장에서 시작되었지만, 왕국을 지배하는 데에는 칼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기록이 필요했다.
칼로 시작해 문서로 완성된 정복 - 둠스데이 북
1085년 크리스마스, 윌리엄은 잉글랜드 전역의 토지와 재산을 조사하도록 명령했다. 이듬해 왕의 조사관들은 각지를 돌며 누가 어떤 땅을 보유하고 있는지, 에드워드 참회왕 시대에는 누가 보유했는지, 토지의 가치는 얼마인지, 그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과 가축, 방앗간과 목초지가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 ‘둠스데이 북(Domesday Book)’이라 불리는 방대한 기록으로 남았다. 기록의 언어는 라틴어였다. 당시부터 ‘둠스데이 북’이라 불렸던 것은 아니다. 훗날 사람들은 이 기록의 권위를 성경의 ‘최후의 심판(Doomsday)’에 비유했다. 그 판정이 최종적이고 되돌리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둠스데이 북에는 정복 전과 정복 후의 토지 보유자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한 장의 기록 안에서 누가 땅을 잃었고 누가 새롭게 차지했는지가 드러난다. 칼로 바뀐 잉글랜드의 지도가 이제 문서 위에 기록되고 있었다.
같은 해인 1086년 8월, 윌리엄은 올드 새럼(Old Sarum)에 주요 토지보유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누구의 봉신이든 궁극적으로 왕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했다. 땅을 조사하고, 기록하고, 충성을 확인한다. 정복은 그렇게 통치의 체계로 굳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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