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길, 초서가 노래한 캔터베리

영어가 문학의 언어로 피어나다

by꽃보다 예쁜 여자



And specially from every shires endeOf Engelond to Caunterbury they wende,
잉글랜드 방방곡곡에서 캔터베리로 향했다.
-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총서시15~16행


캔터베리의 오래된 지붕들 너머로 대성당(Canterbury Cathedral)의 탑이 우뚝 솟는다. 초서가 그린 순례자들이 찾아왔던 도시다.


그보다 300여 년 앞선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한 윌리엄도 도버를 장악한 뒤 캔터베리로 향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순례가 아닌 잉글랜드의 왕관이었다.



잉글랜드 최초의 대성당, 597년,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세운 캔터베리 대성당은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영국에서 가장 많이 찾는 역사 유적지 중 하나이다.



윌리엄의 군대는 도버에서 이질로 많은 병사를 잃었다. 그러나 캔터베리에서는 전투를 치를 필요가 없었다. 당대 노르만 측 기록에 따르면, 캔터베리 사람들은 윌리엄이 도착하기도 전에 도버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나와 충성을 맹세하고 인질을 건넸다.


도시는 그렇게 윌리엄에게 문을 열었다. 그러나 잉글랜드 교회의 중심지였던 이곳에서는 왕권과 교회의 권위를 둘러싼 또 다른 갈등이 벌어진다.





캔터베리, 잉글랜드 교회의 중심이 되다


캔터베리의 역사는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97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를 켄트로 보내 앵글로색슨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도록 했다. 켄트의 왕 에셀베르트(Æthelberht)의 후원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캔터베리에 교회를 세우고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었다.


그때부터 캔터베리는 잉글랜드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로 성장했다.



구글지도,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적인 배럴볼트(Barrel Vault) 구조 단단한 기둥, 11세기 말~12세기 초의 노르만 양식 건축 출처 홈페이지



정복자의 성전, 돌 위에 세운 새로운 질서


캔터베리를 지나 런던으로 향한 윌리엄은 1066년 크리스마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마침내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했다. 정복은 왕과 귀족의 교체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지도층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070년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갠드(Stigand)가 물러나고, 노르망디 출신 수도원장 랑프랑크(Lanfranc)가 새로운 대주교가 되었다.


1067년 화재로 크게 파괴된 대성당도 모습을 바꾸었다. 랑프랑크는 폐허 위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노르만 대성당을 세웠고, 1077년까지 재건을 마쳤다. 성당을 세우는 데 사용한 돌 가운데 상당수는 바다 건너 노르망디의 캉(Caen)에서 가져왔다. 도버성에서 보았던 캉 돌이다. 정복과 함께 사람뿐 아니라 돌과 건축 방식도 해협을 건넜다.


그러나 한 세기가 흐른 뒤, 이 성당은 왕과 대주교가 충돌하는 비극의 무대가 된다.


왼쪽: 캔터베리 대성당의 정문인 서쪽 입구와 그 위로 솟은 벨 해리 타워(Bell Harry Tower), 오른쪽: 둥근 창과 작은 탑들은 노르만 양식의 초기 보여줌



왕과 대주교, 토머스 베켓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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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예쁜 여자가 되고 싶어 꽃을 만드는 공예가입니다. 물론, 외면이 아닌 내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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