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랑하면서 나도 모르게 변한 것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만들어진 성격이나 습관은 누군가를 만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애를 시작한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실제로 우리는 꽤 다른 사람이었다.
같은 일을 겪어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랐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달랐다. 나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도 일단 넘기고 보는 편이었고, 너는 그 마음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낯설었다.
‘이걸 이렇게까지 생각한다고?’
나는 가끔 그렇게 생각했고, 너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래 곁에 있다 보니 이상하게 서로의 모습이 조금씩 섞이기 시작했다.
혼자 밥을 먹으러 가서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네가 좋아할 것 같은 음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길을 걷다가 네 취향일 것 같은 가게가 보이면 장소 저장을 해둔다. 맛있는 걸 먹으면 다음에는 같이 와야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비슷하다.
예전에는 내가 먹고 싶은 것만 골랐는데, 이제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인데도 네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번씩 눈길이 간다.
생각해 보면 참 별것 아닌 일들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네가 자주 쓰던 말을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을 때.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일을 두고 ‘혹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까’ 한 번 더 생각하고 있을 때.
무언가를 결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입장 말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있을 때.
그럴 때면 가끔 생각한다.
‘이거 원래 내가 하던 생각이 아니었는데.’
반대의 순간도 있다.
내가 자주 하던 표현을 네가 쓰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던 것을 어느 순간 너도 좋아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 웃기다.
서로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언제부터 서로의 흔적을 하나씩 가지고 살게 된 걸까.
물론 오래 만난다고 모든 것이 닮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다른 게 많다.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있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너에게는 중요할 때가 있다. 반대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너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 차이 때문에 서운할 때도 있고 다툴 때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순간이 오면 누가 맞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내 생각을 설명하고, 상대를 이해시키고, 결국 하나의 답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누가 맞는지보다 먼저 생각한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꼭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됐다.
어쩌면 내가 너를 닮아가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취향도, 말투도 아닌 이것인지 모르겠다.
나와 다른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나는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닮고 싶지는 않다.
너도 나와 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계속 다른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다만 네가 가진 좋은 것 몇 가지가 나에게 남고, 내가 가진 좋은 것 몇 가지가 너에게 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몇 년이 더 지나 어느 날 혼자 길을 걷다가도,
내가 무심코 하는 말에서 네가 보이고,
내가 내린 어떤 선택에서 네가 가르쳐준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일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오랫동안 나란히 걸으며 상대에게서 좋은 것들을 하나씩 얻어가는 일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모습은 잃지 않는 것.
그렇게 오래 걷다 보면 어느 날 서로를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처음 만났을 때와 여전히 다른 두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참 많이 닮아 있다고.
얼굴도,
말투도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