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역사 탐방
나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이다. 정기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싫어하고 여러 명이 주제도 없이 그냥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소수의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끔 교류하는 것 이외에는 같이 시장 갈 친구도 없다. 카페도 바카라 한 권 들고 가서 읽거나 글 쓰러 혼자 간다.
그러던 내가 좀 달라졌다. 내가 사는 지역 슬롯에 대한 무관심도 반성이 되었고 손녀가 생기고 나서 손녀가 살아갈 세상을 좋게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마침 주민센터에서 이미 자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가 권유하기도 해서 나도 작은 봉사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자치위원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다달이 정례회의를 하며 주민 현안에 대해 의논하고 각 분과위원회가 맡은 행사도 주최를 한다. 그동안은 보이지 않았던 지역의 불편한 점들도 눈에 들어오고 건전한 건의를 하기도 한다. 주민이 단합할 수 있게 체육대회나 전시회도 기획하고 새해 해맞이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동해로 뜨는 해를 보러 간 적은 있었으나 동네 산에 이웃들과 해를 맞으러 간 적은 없었다. 진행 위원이 되어 처음 가 본 새해 해맞이는 동시대의 이웃들과 함께 한다는 면에서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예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동네의 구석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천 변을 잘 정돈할 수 있게 관찰하여 공무원들에게 알리고 주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과실수도 심었다. 산바카라할 때마다 나무들이 잘 크나, 과일이 잘 열리고 있나 보는 재미가 있다. 이렇듯 관심을 가져야 잘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도 된다.
주민이지만 동네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다가 유적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도시의 특성상 대규모의 택지 조성을 위해 땅을 팔 때 유적지와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고 그것을 야외에 보전하기도 하고 유물들을 모아놓은 박물관도 만들었다. 물론 큰 규모의 박물관은 아니지만 우리 동네에서 나온 유적지와 유물이라는 점에서 역사학이나 고고학이 우리와 먼 세상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주민 자치센터에서 수년간 어린 학생들을 모집하여 우리 동네 역사탐방을 해오고 있었다. 올해도 초등생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하게 되어서 자치위원들이 어린 학생들을 인솔하고 활동을 돕는다고 하여 나도 참여하기로 했다. 우선은 성 프란체스코 성당 바로 옆의 유적지에 집결하고 유적지를 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학예사분의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기와를 굽던 가마와 숯을 만들던 가마 등 1000년도 넘는 세월을 건너 과거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박물관까지 손을 잡고 걸어가서 도착했다. 그곳에도 학예사분이 유물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조각난 토기를 맞추어 전시하기도 했는데 삼국시대 것도 있었고 고려나 조선의 자기도 있었다. 특히 다리가 두 개나 세 개밖에 없는 작은 말의 모형을 설명할 때 학생들이 재미있어했다. 신에게 소원을 빌 때 살아있는 생물 대신 토기로 빚은 말을 다리를 없애고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다.
유물 견학을 마친 후 지하층에 내려가면 백제의 고분과 고구려의 고분이 전시되어 있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어떤 학생들은 모래에 파묻힌 토기 조각들을 꺼내서 자석으로 만들어진 자기 모형에 붙이는 활동을 좋아했다. 누가 아는가. 이 학생이 미래에 고고학자가 될지도 모른다. 시대에 걸맞게 전자 게임식으로 유물을 공부하는 프로그램도 많아서 인기가 있었다. 색연필과 스탬프로 바카라갈피를 만들어 가져갈 수도 있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마패를 만드는 활동을 했다. 우리 동네가 임금님이 보낸 사자들이 쉬고, 말을 바꿔 타던 교통의 요지였다는 설명과 함께, 말을 바꿀 수 있는 증서인 마패를 만들어보았다. 슈링클이라는 소재 위에 말 그림을 마음껏 꾸미고 그것을 오븐에 구우면 줄어들면서 두껍고 단단하게 바뀐다. 학생들은 이것에 색색의 매듭 장식을 달아 멋진 마패를 만들어 소중하게 품고 집에 돌아갔다. 혹시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야외 견학부터 박물관 견학과 활동까지 알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 똘똘한 학생들이 커서 장차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흐뭇한 생각과, 어른으로서 미래 세대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탰다는 마음에 행복한 하루였다. 이렇게 주위를 둘러보면 멀리 가지 않고도 우리 동네에도 보고 공부할 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보지 못한 주민이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견학하시기를 적극 추천한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