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를 보며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

by윤병옥

동일본 대지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1년에 발생했으니 벌써 15년이나 지났는데도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짐작이 간다. 진도 9가 넘는 지진은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시키고 일대 지역을 쑥밭으로 만들었었다. 파도의 최대 높이가 40m를 넘었다고 하니 사람들이 보고도 피할 수가 없는 규모였었다.


그 기억이 가시기도 전에 네팔에서 거대한 홍수가 났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나는 형태의 홍수와는 달랐다. 엄청난 양의 흙과 얼음과 바위가 순식간에 밀려와서 구조물과 나무와 집을 휩쓸어갔다. 태평하게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은 피할 새도 없이 떠내려 갔고 수많은 사망자와 실종자를 만들었다. 말이 실종자이지 결국은 찾을 수 없는 사망자의 다른 말일뿐이다. 생존자들도 가족들과 삶의 터전을 모두 잃고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그 당시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고 이전의 홍수와는 전혀 다른 형태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

물은 유속이 빠르더라도 강의 밑바닥을 주로 깎기 때문에 계곡의 단면 모양이 V자 형태이다. 반면에 빙하는 강의 측면을 얼음이 훑고 지나가며 뜯어내기 때문에 U자 형태를 만든다. 비슷한 원리로 네팔의 고산에 있던 빙하가 떨어질 때 얼음이 그 아래의 흙과 암석까지 포함해서 덩어리로 떨어진다. 이 거대한 덩어리들이 계곡으로 떨어지며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면서 네팔 낮은 곳의 마을을 덮친 것이다. 이번은 규모가 아주 큰 경우고 작은 경우는 이런 토사류가 강의 줄기를 막아서 강의 흐름이 정지되어 호수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형태의 호수를 '언색호'라고 하는데 히말라야나 알프스 같은 높은 산 근처에는 이런 언색호들이 많이 있다. 만일 큰 빙하가 떨어져서 덮칠 경우 이런 호수가 붕괴하게 되어 더 큰 재난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재난은 과거에도 있어왔지만 이번 네팔 경우가 아주 심했고 그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말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빙하는 중력에 의해 얼음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며 흐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높아진 기온 때문에 산꼭대기의 얼음이 녹아서 대규모로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번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다."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해마다 기온이 계속 올라간다. 온실 효과로 올라가는 기온의 임계점에 다다르는 시한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지구 내부의 에너지로 인한 지진 같은 것은 인간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영역이지만 온실 효과에는 인간의 활동이나 생활방식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꾸 돌아보게 된다.

재난 지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미디어의 장면에서 자신들이 무슨 죄를 지었냐고 울부짖는 사람을 보았다. 가족들과 집을 잃은 그들의 참담한 마음을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다. 사람이 오늘 무사하다고해서 내일도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으니 허무하기가 짝이 없다. 몇시간전 이야기한 사람들끼리도 생사가 갈렸다.

그러나 재해를 당한 사람들은 벌을 받은 것이 아니다. 만일 신이 있어 벌을 주었다면 그곳에 순례하러 간 사람들까지 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멀쩡한 것도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신은 개인의 화복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심지어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하더라도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인류는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고 굳이 인류만 살아남아야 할 이유도 없다.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에 너무도 무력하다. 지진이나 태풍이나 홍수같은 것은 대피 발령외에는 예방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단 태어난 이상 거창한 명분이나 종교의 교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과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가까운 후손들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큰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불편한 생활 방식을 선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안전한 곳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리한 생활을 하며 손가락질만 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이전 14화에너지에 대한 고민-편리함의 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