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주는 사람

-화면 너머 어딘가

by류정uk


모니카 씨는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사촌 오빠의 아내다.


우리는 여섯 자매였다. 지금은 다섯이 남았다. 딸만 북적이는 집에서 오빠 없이 자란 나는 오빠가 있는 사촌들이 늘 부러웠다. 방학이면 그 오빠가 돌아온다는 말 한마디에 기린처럼 목을 빼고 기다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 오빠의 아내인 모니카 씨를, 나는 오래도록 한국식으로 '올케 언니'라고만 불렀다.


몇십 년을 그렇게 부르면서도 정작 이름 석 자는 몰랐다니, 우리 집안은 사람 이름보다 촌수를 더 소중히 여겼던 모양이다. 카지노톡으로 연결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모니카.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몇 번 되뇌어 보았다.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 뒤로 모니카 언니는 내가 쓰는 글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처음 몇 편을 보냈을 때는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이 나이에 뭘 쓴다고,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싶었다. 그런데 모니카 언니는 매번 답장을 보내왔다. 잘한 점은 조심스럽게 칭찬해 주고, 부족한 부분은 상처받지 않도록 살며시 짚어주었다. 어느 날은 이렇게 말했다.

"이 문장,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두 번 읽게 되네요."

그 말 한마디에 며칠은 마음이 든든했다.


그런데 처음 내 글을 읽고서는 뜻밖의 진단을 내렸다.

"지난 몇십 년 동안 다른 바카라은 거의 안 읽으셨죠?"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나는 눈을 아껴야 하는 사람이었다. 공부도 해야 했고, 온라인 게임도 다녀야 했고, 사업도 해야 했다. 바카라을 많이 읽으면 눈이 금세 지쳐 정작 해야 할 일을 못 하게 되었으니, 바카라을 읽는 일은 내게 즐거움인 동시에 사치였다. 그렇게 나는 읽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살아왔다.


스무 살 무렵엔 이문열, 조정래, 박경리, 조세희에 빠져 지냈고, 그 문장들이 내 생각의 바탕이 되었다. 영국에 와서는 살아내는 일만으로 하루가 빠듯했다. 그래도 늦깎이로 대학에 다닐 때, 영국 선생님들은 문법은 투박해도 요점은 분명하다며 내 에세이에 A를 주곤 했다.


어쩌면 나는 바카라 대신 삶을 읽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읽고, 상황을 읽고, 내가 지나온 시간을 읽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내 문장이 되었다. 그런 내게 모니카 언니가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아무도 복사할 수 없는 글을 써요. 누구의 글도 모방하지 않은, 당신만의 글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결핍감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부끄럽지만은 않았다.

'아, 지난 사십 년의 결핍이 어쩌면 결핍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한 번은 그녀가 어느 장을 너무 서둘러 끝냈다고 지적했다.

"여기, 좀 더 있다 가도 될 것 같은데요."


나는 그 문장 하나를 붙들고 며칠을 다시 썼다. 잘했다는 말만 들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막내를 낳고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서른다섯, 차 한 잔과 마른 토스트 두 조각 앞에서 울던 그 병실. 그 기억을 다시 꺼내어 쓸 때마다 속이 뒤집혔다.


몇 번이나 그 부분에서 펜을 놓았다. 그래도 쓰고, 카지노톡으로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보내고 나면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안 보는 척, 의연한 척. 그러다 오 분도 못 참고 다시 뒤집어본다. 아무 답이 없으면 "바쁘신가?" 하고, 삼십 분 뒤엔 혹시 읽으셨나 싶어 또 확인한다.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버릇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다만 휴대폰을 뒤집는 손길만 조금 빨라졌을 뿐이다.


이 바카라을 쓰는 동안 많은 이들이 내게 문을 열어주었다. 모니카 언니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내 삶이 아니라, 그 삶을 문장으로 옮기는 외로운 시간을 함께 읽어주었다.


이 바카라의 마지막 장을 마치면, 나는 다시 카지노톡을 열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녀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여기, 좀 더 있다 가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럼 나는 또 고쳐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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