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사에서 35년을 근무한 박철수(61)는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 출근 알람이 울리지 않 는 날. 그런데도 몸은 자동으로 6시에 깨어났다. 커피를 내리고 TV를 켰지만 낯설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식탁 위엔 어제 받은 퇴직기념패. '박철수 부장'이라는 명함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박 부장님'이라 불리던 그는 이제 그냥 '집에 있는 사람'이었다.
모바일 뱅킹 앱을 켰다. 퇴직금 잔액 68,500,000원. 35년의 대가치고는 초라했다. 큰애 결 혼, 둘째 전세자금, 장모님 병원비로 중간 정산분은 이미 사라졌다.
90세까지 29년이 남았다. 부부 생활비 월 300만 원이면 연 3,600만 원. 29년이면 10억 4 천만 원이 필요하다. 통장의 6,800만 원으로는 2년도 못 버틴다. 그는 61세에 다시 '신입사원'이 되어야 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4세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나이는 평 균 50세. 퇴직 후 34년이 남는다. 온라인 게임생활 25년, 퇴직 후 인생 34년. 후반전이 더 길다.
이 '조기퇴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AI와 자동화가 중년층 일자리를 더 빨리 밀어낸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이상 재직자의 37%가 자동화로 인해 직무 축소를 경험했다. 제조·사무·회계 등 루틴 업무가 많은 직군은 퇴직이 평균 3.8년 앞당겨졌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간다. 고령슬롯에서 초고령슬롯까지 단 7년. 일본(10년) 보다 빠르다. 2035년이면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이다. 65세 이상 고용률은 36.2%. 일하는 노인 10명 중 5명은 월 200만 원도 못 번다. 평균 임 금 215만 원. 퇴직 전보다 60만 원이 줄었다.
경제적 빈곤보다 더 큰 문제는 정체성의 상실이다. '온라인 게임'이 사라지자 '나'라는 존재도 흔들린다.
더 오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노년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 인생의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 기존의 3단계 인생(교육-일-은퇴)이 끝났다. 이제는 '다단계 인생(Multistage Life)'이다. 일하고, 쉬고, 다시 배우고, 다시 일하는 순환 구조.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직선형 인생'에 머물러 있다. 퇴직은 '종착점'으로 여겨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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