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마개는 왜 주머니에 있을까

by호세

현장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귀마개 줄이 작업복 가슴 주머니 밖으로 삐죽 나와 있는 모습이다. 귀에는 없고 주머니에 있다. 설비는 한창 돌아가는 중인데.


장갑도 비슷하다. 한 짝은 손에 끼고 한 짝은 허리춤에 꽂아 둔 채 일한다. 안전화는 뒤꿈치를 구겨 신어 슬리퍼처럼 끌고 다닌다. 보안경은 이마 위에 얹혀 있다. 이마를 지켜 주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도(?) 이마는 안전하다.


나도 처음엔 이런 모습을 보면 화부터 났다. 지급한 지 한참 됐고, 교육도 했고, 서명도 받았는데. 그래서 한동안은 눈에 띄는 대로 불러 세웠다. "귀마개 끼셔야죠." 그러면 다들 알았다는 얼굴로 귀에 꽂았고, 내가 등을 돌리면 다시 뺐을 것이다. 안전 담당자가 통로 끝으로 사라지는 순간 보호구도 같이 사라지는 거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소음이 귀를 상하게 한다는 것도, 안전화 앞코가 무엇을 막아 주는지도 다들 안다. 입사 교육 때 시험도 봤다. 알면서 왜 안 쓰는 걸까. '게을러서'라고 답하면 속은 편하다. 그런데 그 답으로는 다음 날 현장에서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유를 모아 보기로 했다. 훈계는 빼고, 그냥 듣기만 하는 거다. "그거 왜 빼세요?" 하고 물으면 의외로 대답이 구체적이다.


"이거 끼면 옆 사람 말이 안 들려요."


"장갑 끼면 감각이 무뎌져서 선을 제대로 못 잡아요."


"여름엔 보안경에 김이 서려서 앞이 안 보여요. 그게 더 위험하죠."


"잠깐이면 되는데, 뭘."


마지막 대답은 우리가 흔히 아는 속말이다. 에이, 뭐 괜찮겠지. 그런데 앞의 세 개는 결이 다르다. 옆 사람의 말을 듣고 싶고, 손끝 감각으로 일하고 싶고, 눈앞을 똑바로 보고 싶다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일을 제대로 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불편이다. 사람들은 안전과 일 사이에서 일 쪽을 고르고 있었다.


장갑 이야기는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회전하는 축이나 롤러 가까이에서는 장갑 끝이 말려 들어갈 수 있어서, 어떤 공정에서는 오히려 장갑을 끼지 않는 쪽이 규칙이다. 같은 장갑이 이 자리에서는 손을 지키고 저 자리에서는 손을 잡아당긴다. 현장 사람들은 이걸 몸으로 안다. 그래서 어디서나 똑같이 "장갑 끼세요"라고 하면 말이 먹히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이 현장을 모른다고 느끼는 순간, 나머지 말도 같이 흘러간다.


귀마개를 직접 끼고 서 있어 보면 바로 안다. 설비 소리가 줄어든다. 그런데 지게차 경적이 줄어들고, 호출 방송이 줄어들고, 동료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도 같이 줄어든다. 소음을 막으려고 끼운 물건이 경고음까지 막아 버린다. 이쯤 되면 귀마개를 빼는 사람을 마냥 탓하기가 어렵다. 그 사람은 지금 자기 나름의 위험 계산을 하고 있는 거니까.


야간 근무 때는 더하다. 새벽 세 시에 귀마개 안쪽이 땀으로 미끄러워지면 사람은 슬쩍 뺀다. 졸음을 쫓으려고 라인 소리를 일부러 듣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점검표 칸에 들어가지 않는다. 점검표에는 '착용 여부'만 있고, 안 쓴 이유를 적는 칸은 없으니까.


안전화도 그렇다. 뒤꿈치를 구겨 신는 사람 발을 보면 대개 사이즈가 애매하거나 발볼이 맞지 않는다. 점심 먹고 돌아와 발이 부은 오후에 신어 보면 오전의 신발이 아니다. 불편한 신발은 오래 신기 어렵고, 오래 신기 어려우면 사람은 구겨서라도 신는다. 그걸 보면서 "왜 똑바로 안 신어요"라고 묻는 건, 신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사람에게 하는 셈이다. 신발 가게에서 한 치수 위를 신어 보는 사람은 있어도, 현장에서 신발을 바꿔 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도널드 노먼이 쓴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에는 '인간의 실수? 아니, 나쁜 설계'라는 뜻의 제목이 붙은 장이 있다(원제는 Human Error? No, Bad Design). 우리가 사람의 실수라고 부르는 일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은 물건이 잘못 만들어진 데서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밀어야 하는지 당겨야 하는지 알 수 없게 생긴 문손잡이 앞에서 헤매는 사람을 나무라기 전에, 손잡이를 먼저 보라는 거다.


이걸 읽고 나서 주머니 속 귀마개가 다르게 보였다. 보호구도 누군가 설계한 물건이다. 소리를 줄이고, 파편을 막고, 손을 지키려고 만든 물건. 그런데 그 물건이 일을 방해하는 순간, 일에 밀려 나쁜 사람이 되는 쪽은 결국 사람이다. 규정을 어긴 사람이 되고, 지적받는 사람이 되고, 안전 담당자 눈을 피해 다니는 사람이 된다. 물건은 아무 잘못이 없는 채로.


물론 규정은 규정이다. 소음 구역에서 귀마개를 빼도 눈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적하는 일과 이유를 듣는 일은 순서가 다르다. 이유를 먼저 들으면 지적할 내용이 달라진다. "끼세요"가 "어떤 게 덜 불편해요?"로 바뀐다. 귀마개 종류를 두세 가지 놓고 직접 골라 보게 하고, 김이 덜 서리는 보안경을 몇 개 들여와서 라인에서 써 보게 하고, 소리가 막힌 상태에서도 서로 알아볼 수 있는 수신호를 정해 두는 정도의 일이다. 거창할 게 없다.


보호구를 살 때 구매 서류만 보고 고르는 게 아니라, 매일 그걸 끼고 여덟 시간을 보낼 사람이 먼저 껴 보면 어떨까. 가격표에는 안 적혀 있는 정보가 거기 다 들어 있을 것 같다. 착용감, 무게, 땀이 찼을 때의 느낌, 옆 사람 목소리가 어디까지 들리는지 같은 것들.


한 가지 더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작업자가 불편을 말하지 않고 그냥 주머니에 넣어 버리는 경우다. 말해 봤자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불만은 사라지지 않고 주머니로 들어간다. 그러면 통계에도 점검표에도 남지 않는다.


주머니 속 귀마개는 그 사람이 말없이 낸 작은 의견이다.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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