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8시 교대 시간의 현장에 서 있어본 적이 있다. 기계 소리는 그대로인데 사람만 바뀐다. 주간조는 장갑을 벗으며 출구 쪽으로 걸음이 빨라지고, 야간조는 아직 졸린 눈으로 안전화 끈을 묶는다. 그 사이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에서 오가는 말이 하루 중 가장 짧고, 가장 무겁다.
"별일 없었어요."
"네, 수고하세요."
이 일을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현장을 돌며 가장 오래 눈여겨본 게 이 대화다. 사고 보고서를 읽다 보면 비슷한 구도가 자주 나온다. 설비를 세워둔 사람과 다시 돌린 사람이 서로 다른 조인 경우다. 한쪽은 알고 있었고, 한쪽은 몰랐다. 그 사이에 '별일 없었어요'가 있었다.
물론 인수인계 서류는 있다. 우리 공장에도 교대 일지가 있고 칸마다 빼곡히 적혀 있다. 하지만 일지는 일어난 일을 시간순으로 적게 되어 있다. 안전커버를 잠깐 열어둔 것, 센서가 오전부터 이상하게 반응한 것, 누군가 임시로 끼워둔 지그 같은 것들은 대개 일지에 올라오지 않는다. 쓰는 사람에게는 이미 해결된 일이거나 너무 사소한 일이니까. "에이, 이런 것까지 적어야 되나."
1988년 북해의 석유 시추 설비 파이퍼 앨파에서 167명이 숨진 사고가 있었다. 조사에서 오래 다뤄진 대목 중 하나가 교대 인수인계였다. 정비 때문에 안전밸브를 떼어낸 펌프가 있었는데 그 사실이 다음 조에 제대로 닿지 않았고, 야간조는 그 펌프를 다시 돌렸다. 처음 읽었을 때 사고의 출발점에 한두 문장이 빠진 인수인계가 있었다는 점이 오래 남았다. 케이블 공장의 압출기 앞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말과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우리 회사는 북해 시추선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지만, 말이 빠지는 방식은 놀랄 만큼 닮았다.)
야간 교대는 유독 더 그렇다. 새벽 한두 시에 설비 앞에 서면 몸이 먼저 안다. 졸음은 밀려오고 주변은 조용하고, 옆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시간에 전 조의 한마디가 없으면 사람은 눈앞의 설비를 어제와 같은 설비로 믿고 싶어 한다. 의심하는 일에는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그게 사람이다.
그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같은 일지, 같은 설비, 같은 사람인데 어떤 교대는 빈틈이 없고 어떤 교대는 구멍이 난다.
현장을 오래 돌아보니 답은 의외로 시간에 있었다. 인수인계가 매끄러운 조는 설비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었다. 퇴근하는 사람이 5분을 더 쓰고, 출근하는 사람이 일지를 읽기 전에 한 번 직접 눈으로 본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 오늘 좀 이상했어요" 한마디를 건넨다. 때로는 말이 서툰 반장이 이상 있는 곳에 테이프 한 조각을 붙여두기도 했다. 거칠지만 눈에는 잘 들어온다. 일지에 옮기면 사라지는 온도가, 설비 앞에서는 말에 묻어 전해진다.
교대 시간이 칼같이 지켜지는 현장일수록 이 5분이 먼저 잘려나간다. 버스 시간이 있고, 가족이 기다리고, 수당 문제도 걸려 있다. 나도 퇴근길에 딸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라 그 마음을 안다. 처음엔 나 역시 교대 시간을 줄이는 쪽으로만 고민했다. 그래야 효율이 오르는 줄 알았다.
몇 년 사이 내가 바꾼 건 별것 없다. 인수인계 칸에 '다음 조가 모르면 위험한 것' 한 줄을 따로 만들었고, 반장들이 교대 때 설비 앞에서 만나게 했다. 처음엔 반장들도 "또 뭘 하라는 거냐"는 표정이었다. 다행히도(?) 한 달쯤 지나자 먼저 설비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생겼다. 허접해 보이지만 효과는 있었다. 빈칸으로 두는 날이 줄고 '없음'이라고 적는 날이 늘었다. 없다고 확인한 것과 몰라서 비워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사고는 대개 큰 실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퇴근하는 사람의 발걸음과 출근하는 사람의 하품 사이에서, 말하지 않은 한 문장이 다음 조로 넘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