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이 현장에 처음 들어오는 날이면 늘 비슷한 장면을 본다. 안전화는 아직 발에 덜 맞아 뒤꿈치가 들떠 있고, 새 조끼에는 접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교육장에서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물어보세요"라는 말을 열 번쯤 들었을 텐데, 막상 라인 앞에 서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가만히 있다. 설비 소리가 커서일 수도 있고, 다들 바빠 보여서일 수도 있다. 컨베이어 옆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선배의 등을 보면 말을 거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이 장면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물어보라고 했는데 왜 안 물을까. 교육 자료가 문제인가 싶어 슬라이드를 고쳐 볼 생각까지 했다. 다행히도(?) 자료는 그대로 두었다. 문제는 자료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신입에게 질문은 곧 평가다. 머릿속에서는 이런 말이 돌고 있을 것이다. '이걸 물으면 기본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겠지.' '저 선배 지금 바쁜데 눈치 없다고 하겠지.' 그러다 결국 "에이, 보면 알겠지" 하고 넘어간다. 비상정지 버튼이 어디 있는지, 안전커버를 열어도 되는 때가 언제인지가 그렇게 넘어간다. (나도 처음엔 그랬을 것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그랬다.)
하버드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가 병원 간호팀을 연구하다 만난 결과는 안전을 맡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하다. 팀워크가 좋다고 평가받은 병동이 투약 오류를 더 많이 보고하고 있었다. 예상과 반대였다. 오류가 많아서가 아니라 말하기 쉬운 곳이어서 숫자가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오류 보고가 적은 병동은 어떨까. 조용하다고 해서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이 연구가 나중에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걸 현장에 옮겨 놓고 보면 신입의 첫 주가 다르게 보인다. 조용한 신입은 다 이해했다는 신호일 수도 있고 말을 삼키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겉으로는 똑같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과 모르면서 끄덕이는 사람을 나는 지금도 정확히 구별하지 못한다. 모르는 사람의 속은 그 사람이 말해 주기 전까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질문이 나올까. 쓸 만한 방법은 별것 없다. 교육 끝에 "궁금한 거 있어요?" 하고 묻는 대신, 질문 하나를 이쪽에서 먼저 꺼내는 것이다. "지난달에 들어온 분들이 제일 많이 물은 게 이거예요. 비상정지 버튼 누르면 어디까지 서는지." 누군가 이미 물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자리는 물어도 되는 곳이 된다. 물론 이걸로 다 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첫 질문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확실히 줄어든다.
흥미로운 건 질문이 나오는 장소다. 라인 앞에서는 입을 닫던 신입이 휴게실 자판기 앞에서는 곧잘 묻는다. 커피 한 잔 뽑는 동안 "그런데 그 장갑은 언제 벗어요?" 같은 말이 불쑥 나온다. 일하는 중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로 평가받는 느낌이 줄어드는 모양이다. 그러니 중요한 질문일수록 일하는 자리에서는 듣기 어렵다고 생각해 두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관리감독자의 한마디도 크다. 어렵게 꺼낸 질문에 "그것도 몰라?"가 돌아오면 그 신입은 다시 묻지 않고, 그 이야기는 다음 신입에게까지 전해진다. "좋은 걸 물었네, 그거 고참들도 헷갈려" 하고 돌아오면 공기가 달라진다. 앞의 말이나 뒤의 말이나 걸리는 시간은 5초 남짓이다. 그 5초를 아끼면 나중에 치를 값이 얼마나 될지 나는 계산해 본 적이 없다. 계산하고 싶지도 않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새 학원 첫날 아이 얼굴이 가끔 신입 얼굴과 겹친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일은 나이를 먹어도 쉬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마흔을 넘긴 나도 낯선 회의실에서는 모르는 용어를 그냥 적어 두고 넘어갈 때가 있으니까.
첫 주에 삼킨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누군가의 손이 대신 답을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