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느 점심시간이었다. 혼자 밥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9월부터 부서 인원이 확 줄어든 탓에 빠지기가 눈치 보여서 따라나섰다. 그날의 점심 멤버는 나 포함 4명이었다. 이런저런 별로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로 점심시간을 채우다가, 급기야는 식사를 마치고도 추가로 더 대화를 나누다가 사무실로 복귀하기로 했다. 대화를 주도하시던 분이 말씀하셨다. 저희 부서 인원이 줄었으니 고과 받기가 더 힘들어지겠어요. 그러면서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소연 입사가 18년도죠? 그럼 대리 진급은 21년? 22년? 그쯤 했겠네요?”
기억 안 나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그분이 대리에서 과장까지는 평균 7년의 체류 기한이 있는 것 같다는 둥, 지금 하는 일의 성과가 어떻냐는 둥, 진급하기 전 해에 그냥 그룹장님한테 본인한테 일 몰아 달라고 어필하라는 둥 조언을 해주시기 시작하셨다. 나는 그분 옆 허공으로 시선을 던지며 계속 고개만 주억거렸다. 속에서 몇 번이고 불쑥 치솟는 말이 있었다.
아, 저는 근데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렇지만 그냥 꾹꾹 눌렀다. 호의는 감사히 받겠으나 다음에는 점심을 혼자 먹어야지, 생각하면서.
더 오래전 어느 날이었다. 평소 인간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괜찮다고 생각했던 지인을 내 차로 태워드려야 할 일이 있었다. 만나기로 한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분이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그러면서 바로 첫인사를 건네셨다.
“아, 나도 전에 첫 차가 이거였는데. 고속도로 탈 일이 많아서 위험해서 바꿨지만요.”
내 차는 15년식 스파크다. 5년 된 차를 중고로 사서 이제 7년째 타고 있으니, 12년째 달려 주고 있는 친구다. 이 차와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딱히 불만이 없기 때문에 계기가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 탈 것이다. 나는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 그쵸. 저도 차살 때 고민했는데, 아빠가 경차로 죽을 사고면 아반떼로도 죽으니까 상관없다고 하셔서 그냥 이거 샀어요.” 그러자 그분이 웃으며 다시금 말하셨다.
“돈도 잘 버시면서. 차 좋은 거 타셔야죠.”
그 짧은 한 마디에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일단 내 월급이 적다고 팩트체크 해주고 싶은 욕구가 1차였고, 언짢은 마음이 2차였다. 나의 안전을 걱정해서 하신 말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3차, 그리고 아, 이분과 이 이상으로 관계가 발전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4차. 그러면서 말 한마디로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달라지는 나도 참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5차로 들어서 혼자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피곤했다. 그래, 피곤함. 그게 내가 그분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주된 감정이었다. 나는 나를 평가의 잣대에 올려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나의 연차나 성과나 타고 다니는 차에 대해 이 나이에는, 이 연차에는, 이 월급에는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획일화된 기준을 들이대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관심이 없다. 모두가 똑같은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나는 그 경쟁선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단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관심 없는 게 맞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저 돈에 관심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실 돈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저 그런 세상의 잣대와 평가에 관심 없어요’라고 말하는 나는, 사실은 누구보다 욕심이 많고 열등감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도 같다. 지금의 나는 한 번 심하게 앓고 난 뒤에 자기 방어를 위해 회피를 선택하고 있는 걸지도.
아니, 사실은 그냥 귀찮은 게 크다. 집도, 차도, 돈도, 성과도, 다 그냥 신경 쓰기 귀찮고 골치 아프다. 그래놓고 욕심 없는, 고고한 사람인 척하고 있는 나 자신이 참.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그 지점일 것이다. 바카라에 수록된 작품들은 자본주의 슬롯가 가지고 있는 은근한 계급을 다룬다. 그 바카라을 읽고 나는 한 줄로 소감을 남겼다.
‘세상에 소설이 필요한 이유. 그렇지만 소설 속 세상은 좀 더 애틋했으면.’
나에게는 재밌다기보다 불편한 바카라이었다. 바카라에서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세상을 하나씩 보면서 나는 그 비참함에 불편해졌다. 그리고 외면하고 싶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아름답고 이상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당장 우리 아빠도 매일 목숨을 걸고 운전을 하는데도 말이다. 평소 <매트릭스> 속 빨간약보다 파란 약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 바카라은 말하는 듯했다.
너 진짜 몰라? 알잖아. 이 세상이 이렇다는 것.
삶은 단지 즐기면 되는 거라고, 삶의 모든 것은 부정적인 것조차도 그저 재밌다고 여기면 된다고 말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풀어낼 수 있던 것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들은 당장 하루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지 않고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관심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특권이라는 것을, 관심 없다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세상이 주입하는 욕망에 나를 끼워 맞추고 덩달아 안달복달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앞으로도 성과를 내기 좋은 일보다는 내가 생각하기에 필요한 일을 할 것이고, 내 인생의 서브퀘스트들을 위해 워라밸을 챙길 것이고, 내 차 토니가 허용하는 한 오래오래 함께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단순한 회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을 외면하고 혼자의 안위를 챙기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그 속에서 내 기준을 잃지 않으려면… 최근의 몇 마디와 바카라 한 권이 남긴 질문이 오래도록 마음에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