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감정을 털어내는 방법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특성 중 하나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쓸데없는 생각을 잘 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내가 정말 후술하는 것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나의 추구미인 것 같긴 하지만 그냥 써보겠다). 생각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모든 생각은 필요하거나 재미있어야 한다. 옛날에 아이유가 기분이 안 좋을 때 ‘나 지금 이 기분 몇 분 만에 내 의지로 바꿀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적극 활용한 덕분이다.
쓸데없는 생각이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생각이다. 가령 이미 지나간 일이나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것들. 기분이 상한 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기분이 상하게 된 사건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 어찌할 수 없고, 감정은 그 일의 잔여물 같은 거라 그걸로 계속 기분 안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게 너무나도 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지나간 일을 털어내는데 능한 편이다.
그래서 나는 월요병도 별로 없다. 지금 하는 일이 그렇게 싫지 않아서 (물론 그렇게 좋지도 않지만) 그럴 테지만, 월요일에 회사를 출근해서 일어날 일들을 굳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가 더 큰 것 같다. 부정적인 감정의 실체는 별거 없다. 충분히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다. 고민거리가 생기면 고민을 해서, 당장 해야 할 Action을 찾는다. 그리고 그걸 하면 된다. 해야 할 게 없거나 할 수 있는 게 없으면 더 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할 일이 생길 때까지 그냥 기다리면 될 뿐.
그러니까, 지난 주말 이후 꽤 오랫동안 남아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서 나는 다소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몇 년 동안 참여하고 있는 회고모임의 첫 오프라인 행사가 있었다. 이제는 열심히 참여하지 않지만, 내가 정말 사랑했던 모임이라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류의 모임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공감대는 상당한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그럭저럭 모임에 참석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뒤풀이까지 따라가게 되었는데, 그날 프로그램들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앞자리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좀 웃기지 않아요? 좀 웃겨요. 어떻게 하면 회고를 써서 더 나아질지를 공유하고 거기에 대해 감동받고 감탄하는 게.”
프로그램 중, 본인이 회고를 어떻게 써서 어떤 효과를 얻었는지를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그냥 그 분위기 자체가 웃겼다고 했다. 말하면서도 웃음을 못 참겠다는 듯 피식거리는 얼굴을 보면서, 순간 표정관리가 안 됐다. 나는 내 옆에 앉아 계시던 분과 당황스러운 눈빛을 공유했다. 네? 그럼 여기 왜 오셨어요? 하는 말이 차올랐으나 눌렀다. 단지 농담 섞어 넘겼을 뿐이다. “아 이분 다음 기수 이 모임 안 하시겠네 이 모임이랑 안 맞네!” 그렇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이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집에 가고 싶어졌다.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렇게 대충 어영부영 뒤풀이 자리를 마무리했는데 돌아서는 뒷맛이 썼다. 근 몇 달 동안 가장 시간 아까웠던 순간 1위 확정, 땅땅.
그럴 일이 아니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너무나 사소한 일이다. 나를 공격하거나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었다. 이런 걸로 기분 나빠봤자 내 손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그 말이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았을까? 이렇게 오래 남는 것은 뭔가 더 풀어야 할 것이 있다는 의미다.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 제대로 긁힌 거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나누고 감동받는 그 분위기를 폄하한 것에 말이다.
언젠가부터 세상에 ‘오글거린다’라는 단어가 생겼다. 그 말이 생겼기 때문에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문장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조금 속상해진다. 나 역시 그 말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도 같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자아를 쉽게 공유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아니, 어쩌면 깊어지기 싫은 걸 수도 있다. 한쪽으로 깊어진다는 것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워지는 거니까. 오글거린다는 표현도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내뱉는 단편적인 평가일 뿐이다. 나는 그 벽을 느끼는 표현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도 같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깊어지면 된다는 것을, 그 회고모임을 비롯한 모임들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왜 그렇게 두루두루 예쁨 받지 못해서 안달했는지, 참.
내게 그 모임은 그런 의미였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해받고 긍정받고 위로받고, 마음속의 동물의 숲 같은 공간. 그런데 거기에 외부 침입자가 나타난 거다. “이러는 거 웃겨”라고 무례한 시선을 들이미는. 그래서 나는 언젠가 나도 부끄러워했던 내 자아가 다시 공격받는 것처럼 느낀 것 같다.
아, 생각하다 보니 그냥 나는 그 무례함에 화가 났던 것 같다. 아니 다 떠나서, 이해가 안 될 수는 있지만, 그걸 그 모임의 구성원들 앞에서 얘기하는 그 태도가 이해가 안 됐다. 어떻게 듣는 사람을 생각 안 하고 말할 수 있지? 그냥 솔직했던 거니까 죄가 없다. 그런데 상황을 가리지 않고 솔직한 것은 멍청한 거라고 생각한다. 멍청한 것도 죄가 없다. 하지만 나는 멍청한 사람과 굳이 교류하고 싶지 않다. 아마 그분도 우리와 굳이 관계를 이어갈 생각이 없으니까 말을 가려서 하지 않으신 거겠지만.
그리고 일요일에도 또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생략. 똑같이 사소한 일이다. 단지 내 기준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지난 일들을 곱씹어보며 이 글을 쓰면서 또다시 느낀 거지만, 나도 참 예민하다. 그냥 허투루 던진 말 하나를 이렇게 붙잡는 나 자신이 쫌생이 같다. 그렇지만 어떡하겠나 그게 나인걸… 결국 내 그릇이 간장종지만 해서 생긴 일이다. ‘내 기준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그게 답이다. 말을 솔직하게 내뱉고, 무례하게 굴고, 일처리를 똑바로 못하고(일요일 일) 그런 것들은 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다. 그럴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나는 ‘내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체 왜 저런 말을 내뱉지? 애초에 이해를 할 수 없다. 이해를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세상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다양할 뿐이다.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길 바라는 것은 나의 통제욕일 수도 있겠다.
결국 다 내 마음가짐의 문제였거늘. 이해가 안 된다고 발을 구르며 사소한 것에 긁혀서 분개하는 내가 가장 멍청했음을.
아, 이걸 깨달아야 해서 그렇게 오래 내 마음속에 머물렀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뒤풀이를 간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싶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유례한 사람들뿐이라, 세상을 살면서는 이런 무례한 사람을 만나는 경험도 필요하니까 말이다. 앞으로는 그냥, 그러려니. 그러니까 비로소 지나간 일들이 씻겨 내려갔다.
오케, Thank you,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