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 다녀오면 늘 엄마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 그러지 않고서야 견딜 수 없는 뭔가가 나를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연휴 전날 본가에 밤늦게 도착하자마자, 나는 어떤 말로 엄마와의 관계를 끊을지 고민했다. 오는 길에 동생을 약속장소에 내려주고 나 혼자 집에 도착한 뒤였다. 엄마는 집에 바로 오지 않은 동생에 대한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부모도 모르는 새끼, 엄마가 죽어도 눈 하나 깜빡 안 할 새끼, 다시는 꼴도 안 보고 싶은 새끼…. 동생에게 약속장소로 바로 가라고 권한 것이 나라고 말해도 엄마한테는 들리지 않았다.
동생 편을 드는 내게도 분노가 쏟아졌다. 열받아서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며 소리 지르는 엄마한테, 나는 속으로 말했다. 엄마, 자기감정은 알아서 정리하는 게 성숙한 인간이야. 엄마가 폭발할수록 나는 차갑게 식었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 밖에 없었다.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 내가 그 자리를 바로 박차고 나오지 않은 것은, 엄마에게 기름을 끼얹었다가 진짜 칼부림이 일어나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나는 대신에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아, 지긋지긋하다. 대체 얼마나 더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가장 상대하기 싫은 유형의 사람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 년에 몇 번이고 마주해야 하는 일. 그렇게 보내는 며칠 동안 나는 한없는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이 든다. 사소한 일에도 언제 분노할지 몰라서 조마조마한 마음, 내가 긍정적이고 행복한 사람으로 살려고 발버둥 치던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는 것 같은 기분. 나를 두르고 있던 미소의 가면이 무너져내리고, 이게 나의 기원이었지, 하며 깨닫게 되는 무력감.
지난번에도 그랬지. 그때 나는 정말 한 번만 더, 를 다짐했다. 단 한 번만 더 참아보고, 다음에도 이러면 그때는 나를 위해서 과감하게 연을 끊겠다고. 그렇게 매번 다음 명절까지 몇 달이 지나는 동안, 내 칼날은 무뎌지고, 다시 날 서고, 다시 무뎌지기를 반복해 왔다.
엄마와 최대한 말을 안 섞으려는 나와 달리 동생은 밸도 없는지, 그럼에도 기어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외식 자리를 만들어냈다. 가족식사 자리는 항상 험악했기에 나는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아빠와 동생은 노력해보고자 했다. 명절 당일이라 문 닫은 식당들 중 드물게 연 곳을 찾아갔다. 엄마는 또 고기가 별로라는 둥 불평하면서 다른 식당이 낫다는 얘기만 늘어놓았다. 사주는 사람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말들이다. 다시금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왜 또 여기서 돈과 시간과 감정을 쓰고 있을까.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는 많이들 그러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부모님에 대한 애정 때문에 다들 감내하는 거겠지? 엄마에 대한 애정이 없는 나로서는 도무지 견뎌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식사라도 함께 하는 가족으로 보이기 위해? 자식이 밥 사주는 부모님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그게 내가 행복한 길이 아닌데, 도대체 왜.
그렇게 겨우 며칠을 버티고 다시 인천으로 올라왔다. 본가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이 평온해졌다. 한동안 다시 내 일상을 바삐, 평화롭게 살면 된다. 당장 오늘 바로 회사에 가서 잠깐 일을 할 것이고, 저녁에는 반가운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부드럽게 소통할 수 있는 정상적인 관계가 그리웠다.
진짜로, 벗어나야 한다. 더 이상은 괴로워하는 나를 두고 볼 수 없다. 때마침 명절을 맞아 SNS에서는 가족과 연을 끊고 후련해진 사람들의 고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러면 된다. 곧 내가 집에 도착하면 엄마는 쏟아낸 감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고, 아무렇지 않게 또 상냥하게 메시지를 보내올 것이었다. 그 메시지에 어떻게 부글거리는 내 마음을 실어서 보낼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일단은 그냥 일부터 하고 차차 생각하기로 했다. 회사에 와서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점심을 먹었다. 그러다 가족톡방에 아빠가 점심 먹는다고 보낸 사진을 보며, 사진 구석에 함께 찍힌 땅콩이 눈에 걸렸다.
오늘 새벽 바삐 인천으로 올라오려던 참이었다. 엄마는 땅콩을 삶아뒀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라서 샀다며 며칠 동안 몇 번이고 종용했던 그 땅콩이었다. 지난번에도 사놨길래 이제 땅콩 안 좋아한다고 사지 말라고 했었는데, 하지 말라고 한 건 잊었나 보다. 엄마의 기억은 지난 세월 어딘가로 고정이 되어 있곤 했다. 그 또한 짜증이 났다. 억지로 꾸역꾸역 몇 개 까먹다가, 또 속이 답답해져서 내려놨던 땅콩이었다. 엄마는 내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데, 또 엄마가 나를 생각해서 사 왔다는 이유로 이 땅콩을 못 본 체 하지 못하는 내가 더 짜증 났던, 땅콩.
그걸 떠나기 직전까지도 엄마는 다시 내게 들려줬다. 그 또한 엄마의 사랑을 빙자한 일방적인 폭력으로 느껴졌다. 엄마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강요하는 게 너무 많았다. 잔소리도, 폭력도, 강요도, 통제도, 거절하면 사랑을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식이 되었다. 일방적인 요구는 소통이 아니다. 그건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다.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가 들이미는 땅콩에 목이 막혔다. 나는 칼을 벼렸다. 안 먹는다고 했잖아, 어차피 버릴 거 안 가져간다고! 그렇게 내가 식탁에 두고 떠난 땅콩을, 보다 못한 아빠가 본인이 드시겠다고 챙겼다. 그렇게 집을 떠나왔는데, 아빠가 사진을 보낸 것이다.
아, 땅콩. 그걸 보자 나는 생각해 버렸다. 그냥, 그냥 가져올걸. 못 이기는 척 가져와서, 차라리 몰래 버릴걸. 엄마가 나를 위해 사놓고 삶아뒀다는 땅콩을, 엄마 눈앞에 두고 오지 말걸. 그 생각을 해버린 나 자신을 깨닫자 눈물이 났다. 결국 내 칼날은 휘둘러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엄마는 내 감정을 전혀 배려해주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엄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잘 먹던 어린 나를 생각하면서 땅콩을 준비해 두는 그 마음을 못 본 체 할 수 있을 정도로 모질지 못해 버렸기 때문이다.
학대하듯 대해도 엄마라고 챙기는 동생을 보며, 나는 엄마라는 존재를 아끼는 동생이 가엾고 애처로웠다. 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단호하게 마음을 먹고 두고 온 그깟 땅콩조차 이렇게 나를 옥죄는데, 내가 엄마한테 더한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내뱉은 말들이 언젠가 나를 짓누르게 될 게 뻔했다. 고작 땅콩조차 이렇게 후회스러운데.
나는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문제는 서로의 의지가 있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나 혼자 어찌 애써서 될 리가 없는, 그렇지만 엄마는 도무지 의지가 없는, 아니, 어찌해야 할지 방법조차 모르는 이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절망스러웠다. 그냥 이대로 이 생의 연이 끝날 때까지 버텨야 할까? 시간이 더 지나고 지나고 지나고 상처가 더 쌓이고 쌓여서 곪아터져서 아물지 않게 된 뒤에야, 그때야 나는 이 관계를 끊어낼 수 있을까?
차라리 나는 바라본다. 엄마와 인연을 끊지 못할 거라면, 그래서 다음 생에 또 엮이게 된다면, 그때는 차라리 또 부모 자식 간의 연으로 만나는 게 좋겠다고. 역할을 바꿔서 그때는 내가 부모로. 그럼 정말 최선을 다해 가르쳐줄 텐데. 사람과 소통하는 법,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 사랑을 오롯이 전달하는 법. 나도 미처 못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아직 많이 어렵지만, 이번 생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깨우치려 해 볼 텐데. 그래서 그때의 엄마는 나처럼 혼자 속 썩지 않고 외롭지 않을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수 있을 텐데. 이번 생의 나는 가끔씩 너무 외롭고, 힘들고, 엄마가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