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
가끔 내가 생명과학을 전공했다고 말하면 이과인 게 의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 나는 과학도보다는 문학도에 더 어울리는 이미지인가 보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는 생명과학이라는 것이 나의 가치관에 상당히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생명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나는 아래와 같이 대답할 수 있다.
“생명에는 큰 의미가 없어요. 우리는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어쩌다 자연스레 생겨난 유기물 덩어리고, 우리의 모든 사고는 전기신호일뿐이에요.”
학부 과정에서 우리 학부는 세부 전공을 나누지 않고 ‘생명과학부'라는 이름으로 연관된 많은 학문을 배웠다. 과목들은 생화학, 분자생물학, 유전학 등 세포와 유전자 단위의 microbiology와 진화생물학, 생태학, 환경생물학 등 macrobiology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주로 배우고 관심을 가지는 쪽은 아무래도 제약과 의료 등 우리 몸에 작용하는 기전을 연구해서 인간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microbiology다. 나 또한 주로 microbiology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학부에서 배운 것들이 흐려지면서, 그래서 나는 이 학부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 바로 “진화에는 우열이 없다”라는 것.
우리는 흔히 더 진화한 것을 더 우등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틀린 생각이다. 진화는 단지 그 환경에 더 잘 적응했을 뿐이다. 절대적인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만, 당뇨, 낫모양 적혈구 빈혈증 같은 질병도 어떠한 환경에서는 그 형질들이 더 살아남기 수월한 형질이 된다. 진화는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일 뿐, 당위가 될 수도 없다.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사실은 그냥 공통 조상이 같을 뿐이다. 그런데 흔히들 원숭이보다 사람이 더 우월한 종족이며, 더 나아가서 원숭이가 겪어야 할 진화과정이 인간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숭이도 사람도 현재 시점에서의 최종 진화 산물이고 둘 중 우열을 따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딱히 특별하지 않은 존재다. 세상을 구성하는 여러 최종산물들과 동일한 존재일 뿐이다. 인간을 다른 생물들과 특별히 구분된 존재로 여기려면, 생명과학으로는 부족하다. 특별한 의도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 종교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나는 종교를 믿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인간이 특별할 이유는 없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인간의 생애주기를 따라 살아가는 나 자신을 개구리밥에 비유하곤 했다. 모든 생물의 삶이 사실 개구리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인간의 생명에 가치가 있다고 본다면 모든 생명도 가치가 있다고 봐야 한다. 생명에 가치가 있는 이유는 1회성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의 생명은 내 것이라 유독 소중한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우리에게 유독 소중한 이유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생명과 소통하고, 그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내 생명도 소중하게 대우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게는 삶에 사명이 없다. 그냥 어쩌다 보니 생겨난 유기물에, 특별한 의도를 가진 신이 부여한 게 아니라면 대체 어떤 사명이 있단 말인가.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삶이 축복이 된다. ‘삶은 어떠하기에 의미가 있다'라고 말하게 되면 반대로 ‘어떠하지 못한 삶’은 의미가 없다는 게 된다. 나는 그 생각이 싫다. 우리는 이루어야 할 목표 없이 자유롭게 본인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면 된다. 그 ‘본인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최선을 다해, ‘행복’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호르몬을 통한 세포 내 흥분 상태로 얻게 되는 만족감을 추구하며 살아가면 된다. 세상의 그 어떤 숭고하고 비장한 목적도 결국 수단일 뿐, 궁극의 목표는 행복이다. 다만 행복하기. 생명체에게 그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러니 삶은 단지 행복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렇기에 삶을 살면서 “왜 사는가"는 질문은 내게는 무용하다. 그냥 태어났기 때문에 산다. 대신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의무를 찾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 내 행복의 방식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나는 삶의 주권도 본인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저히 행복할 수 없다면 다만 어쩌다 얻게 된 이 삶을 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가치는 오롯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이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삶을 강요할 수 없다. 단지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올 수 있다고, 행복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 생각보다 쉽게 얻을 수 있고 무조건 느낄 수 있는 전기신호이므로 이왕이면 더 버텨서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은 내가 누구보다 인간이 다른 존재보다 특별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기본 욕구를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비혼주의나 딩크를 비롯한 사람들의 선택을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야 한다. 인간은 그 이상의 정신적인 것을 추구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인간의 욕구가 단순히 오래 사는 것뿐 아니라 개별 개체의 만족감을 최대화하며 잘 사는 것, 생물학적 유전자(gene)를 남기는 것뿐 아니라 문화적 유전자(meme)를 남기는 것으로 확장되었다고 보면 결국 생존과 번식 욕구의 일환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지금의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지 거대한 생태계의 일원인 나는 별 부담 없이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이 삶을 재미있게 즐기려 한다. 그러면서도 가치는 있지만 의미는 없는 이 삶에, 나만의 의미도 채워나가고 싶다. 그게 지금의 나의 행복의 방식이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