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것과 악한 것

그리고 다만 믿고 싶은 것

by쪼이


1. 성선설을 믿는 이유


새해 들어서 매일 아침 글 쓰는 모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 모임에서 한 분이 내게 글 쓰고 싶은 이유를 물어보셨고, 나는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생각과 감정을 퍼뜨리는 광역버프에는 글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데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것은 ‘글을 쓰고 싶은 이유’이고, ‘글을 쓰는 이유’는 아닌 듯하다. 지금의 나는 내 글이 남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못한다. 지금은 단지 쓰고 싶어서 쓰는 배설욕에 가깝다. 다만 언젠가 내가 쓰는 글은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내 대답에 그분이 이타적인 이유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모든 사람은 타인에게 영향을(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미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라고 대답했는데, 그로부터 성선설/성악설 대화가 시작되었다.

내가 성선설을 믿는다고 말하면, 몇몇 사람들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직 아름다운 것 같다며 나를 순수한 사람으로 바라봐준다. 그러면 다소 머쓱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성선설은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함의 기준이 넓은 것에 가깝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생명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유전자에 새겨진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생존과 번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태계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은 악하다고 할 수 없다. 인간슬롯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기적인 것은 악하다고도 선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함과 악함을 판별하려면 나 자신의 이익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행동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영향이 없고 오직 타인을 구하는 것과 해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구하는 것이 우세할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을 나는 슬롯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존재가 인간이자, 인간이 번성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나라는 한 사람은 하나의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슬롯에서 다정함은 타인의 호의를 살 수 있는 최고의 생존 전략이다.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은 또한 지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어떤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계산할 수 있어야 다정할 수 있다. 그것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람들은 진정 현명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인간슬롯가 생존을 보장해 주는 기본적인 복지가 없어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리가 작용하는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보다 다정함이 좀 더 우세한 형질로 번성하는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생각하다 보니, 다정함은 남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이 한계로 느껴진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쉽게 해하는 무정한 형질이 살아남기가 쉬울 것도 같다.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인덕으로 통치한 군주보다 무력으로 군림한 군주가 더 강력했던 것도 같다.

그런 생각으로 흘러가다 보면 이내 씁쓸해지지만, 나는 인간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원칙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번식이란 단순히 생물학적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을 넘어서, 다른 정신적인 가치를 퍼뜨리는 것을 추구하는 쪽으로 확장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고, 바카라을 쓰고 싶어 하고,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그 예시이다. 그 기저에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보람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다. 그러니까, 나는 계속 사람을, 성선설을 믿고 싶다는 말이다






2. 이기적인 것과 악한 것


두어 해 전부터 동생이 인천에 살게 되면서, 명절에 동생이 운전하는 차로 함께 본가에 내려가곤 한다. 고등학생 이후로 떨어져 지낸 우리는 여느 남매들처럼 명절 때 생사만 확인할 정도로 데면데면했었다. 처음 같이 집에 내려가기로 했을 때, 어색할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우리는 타고난 성향과 살아온 환경이 상당히 다르다고,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몇 시간 동안 차 안에서 단둘이 대화를 나눠보니까 서로 성격이나 가치관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느껴서 놀라는 요즘이다.

이번 설에도 동생과 시간 맞춰서 함께 본가를 오갔다. 내려가는 길에 운전하면서 지루해진 동생은 재밌는 얘기 좀 해보라며 이것저것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나, 나랑 최근에 성악설 얘기한 게 누나였나?” 하는 거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 동생이랑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최근에 성선설-성악설 얘기를 글쓰기 모임에서 했었기 때문이다. 이를 시작으로 잠깐 각자의 생각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늘 선한 것과 악한 것의 정의부터 헷갈린다. 어린아이가 잠자리 날개를 떼는 행위는 뭘 몰라서 하는 거라는 내 말에 동생이 반박했다. “누나, 나는 잠자리가 아플 걸 알고 있었어. 알면서 한 거야.” 또다시 나는 내 시선으로만 세상을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측은지심에 그런 행동을 못하는 사람이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거다.

이야기가 이어진 것은 다시 인천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우리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으레 그렇듯 또 엄마가 집안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도망치듯 빠른 귀경을 택했다. 나는 다시 또 엄마와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있었던 일에 대해서 대화를 하다가 동생이 말했다. 이렇게 본가에 들를 때마다 엄마와 서로 화내고 돌아서면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 죄바카라감이 든다고. 나는 동생한테 그건 정당방위라고,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고 말해줬다. 나 역시 오랫동안 괴로웠지만,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그냥 맘 편히 엄마를 미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던 동생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불쌍해. 나는 되물었다. 누가? 그러자 동생이 대답했다. 엄마가. 그 말에 잠깐 입을 다물고 있던 내가 내뱉었다. 나는 네가 더 불쌍해.


항상 나는 동생을 착하다고 생각해 왔다. 엄마는 나보다 동생한테 더 가혹했는데도 동생은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늘 이기적이었다. 나한테 해가 되는 일에 인색하고 냉정했다. 반면 동생은 그런 면에 대해서는 나보다 정이 많았다. 우리의 차이는 어디서 온 걸까? 조용히 각자 생각에 잠겼다가 내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잠자리는 못 괴롭히지만 엄마를 미워하고, 너는 잠자리는 괴롭히지만 엄마를 가엾어하는데, 누가 더 착한 걸까?” 그러자 동생은 그냥 사람은 다양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선하다, 혹은 악하다는 단순한 척도로 평가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성선설을 믿는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기적인 것은 생물의 본성’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인 것은 선하다고도, 악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내가 이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자리와 엄마의 차이는 분명하다. 잠자리는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엄마는 나에게 해를 끼친다. 나는 나한테 해롭지 않은 것들에 한해서 한없이 관대했다. 나는 이기적인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므로 당연하다는 이유로 그런 나의 사고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모든 생물은, 모든 인간은 당연히 이기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는 나는 사실 오히려 누구보다 성악설을 믿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고 단지 표현의 차이일 뿐인데,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조금 덜 아름답게 느껴져서 씁쓸했다.




- 202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