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이란 말 대신, 무리하지 말라는 말 대신
내가 임신 기간에 들은 말 중에 기분 좋았던 말 중 하나는 ‘기분 좋을 만큼만 하세요’ 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은 대부분 요가 수업 도중이었다.
임신 전에도 요가 수업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였고, 그 말을 정말 좋아했다. 남들의 속도나 아사나에 맞추지 않고,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 내 몸이 닿는 만큼만 해도 충분하다는 말이 그저 ‘나 자체로 충분하다’는 말처럼 들려 위안이 되었다.
임신기에 하는 요가에서는 그 말이 ‘기분 좋을 만큼만 하세요’로 바뀌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는 것과 조금 다르다. 임신기에는 평소 나의 체력과 몸을 생각했을 때 ‘어? 이정도는 원래 할 수 있었는데? 이게 지금은 왜 안되지?’라는 벽에 수도 없이 부딫힌다. 내가 아는 내 몸은 이것보다 더 갈 수 있는데, 이것보다 더 움직일 수 있는데 지금의 나는 아이를 품은 몸이기 때문에 예전만큼 움직여주지 않는다.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는 예전의 나의 기준과 현재의 나의 기준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렇지만 ‘기분 좋을 만큼만’은 나의 할 수 있는 만큼 즉, 능력치와 무관하게 내가 딱 시원할 만큼, 무리하지 않는 만큼만 갈 수 있게 잡아준다. 예전만큼 기울이지 않아도 충분히 순환이 되고 내 몸에 도움이 된다는 안심의 말까지 더해주신다.
사실 이 말은 무리하지 말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인데, 왜 안정을 취하라는 말이나 무리하지 말라는 건 기분이 안좋을까. 행동의 시작점과 판단의 기준이 나인지 외부인지가 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좋을 만큼은 내가 선택한다. 내가 움직이고 싶으면 움직이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춘다. 근데 무리나 안정이라는 단어는 보통 외부에서 온다. 남들이 보기에 ‘이건 임산부에게 무리인 것 같은데?’라는 판단이 들 때 그 단어가 튀어나온다.
예를 들어, 임산부가 락페스티벌에 갈 때, 콘서트에 갈 때, 러닝을 할 때, 주 5회 운동을 할 때, 일에 몰두할 때 모두 ‘무리하는거 아니야?’ 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 ‘기분좋을만큼’을 대입하면 모두 허용되는 범위다. 왜냐 내가 기분좋은 범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정이나 무리라는 기준에서는 모두 미달되는 행동들이다.
물론 기분좋을 만큼은 가끔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주기도 한다. 기분좋게 놀다가도 금방 체력이 떨어지고, 피곤하고, 아파지기 때문에 그럴 때는 주저없이 휴식을 선택한다. 그냥 누워버린다. 아무리 노는 거 좋아하는 나도 몸이 피곤해지고, 배가 댕기면 스스로 조절하고 휴식을 취한다. 더할 수 있을 것 같거나, 지금 너무 게으른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아무렴 어때 하는 마음으로 모든걸 미뤄버리고 4시간씩 낮잠을 드르렁 푸르렁 자고, 멍 때린다. 남들이 무리라고 판단하는 그런 행동들을 할 때는 컨디션이 좋고, 그런 날을 보냈을 때 아이와 더 기분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물론 흥에 겨워 살짝 무리의 선을 넘을 때도 있지만 어쨋든 무리하지말라는 말은 참 기분이 좋지 않다.
요즘은 전종관 교수님의 유퀴즈 덕에 임산부에게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산부인과 진료를 갈 때마다 운동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시고, 오히려 내가 후기에 접어들어 배가 뭉치는 것 같다고 걱정스런 소리를 해도 그래도 많이 걷고 꾸준히 운동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나는 그 말이 참 기분이 좋다. 원래의 나를 모두 내려놓고 살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잘 챙겨야 아이도 잘 돌볼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내가 나를 잘 돌보아야 내 안에 있는 아가를 잘 돌볼 수 있고, 내가 평안해야 아이도 평안할 수 있다. 내가 나를 돌봄으로써 아이를 돌본다.
임산부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은 괜히 있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내가 ‘기분좋을 만큼’의 하루를 선택해서 그만큼의 날들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갈 거다.
29주 6일. ‘할 수 있는 만큼’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잠시만 외출하고 와도 3시간씩 낮잠을 자거나 누워있어야 한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가을 날씨인데 몸이 무거워 한강공원에 가다가 발을 돌려 침대에 누웠다. 기분좋은 것들을 조금씩 못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고, 햇살이와 발맞추어 잘 조절해야지. 요즘은 태동이 우르르쾅쾅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듯이 손도장을 꾸욱꾸욱 누른다. 마치 나랑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손을 쭈욱 내미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같이 손을 꾹 맞추어준다. 햇살이 하이파이브! 그래 그렇게 우리 힘을 내어서 남은 2개월도 기분좋게 잘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