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읽지 않은 바카라이 읽은 바카라보다 언제다 더 매력적이다

주말의 츤도쿠 생활에서 길어올린 생각과 문장들.

byzeze

토요일 아침, 간단히 아침을 먹고 양재 도서관으로 향한다. 비가 온 뒤라 녹음이 짙고, 비냄새가 좋다. 임신한 뒤로는 햇빛이 쨍하고, 맑은 날 오히려 쉽게 지치기 때문에 이렇게 바람이 불고, 한층 어두운 날이 더 좋아진다. 도서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813.7 서가 쪽을 향해 간다. 목적 없이 눈에 들어오는 바카라, 읽고 싶었는데 우연히 발견한 바카라을 5권을 열심히 고른다. 이번에는 양귀자와 김초엽의 소설, 육아와 태교 바카라, 안리타의 에세이를 골랐다. 도서관에만 오면 읽고 싶은 바카라이 너무 많고, 당장 이 활자들을 와구와구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대출이 끝나면 향하는 곳은 옆 블록의 까페 MOHO. 그 옆에 가든서비스라는 새로운 신상 카페가 생겼지만 나는 여전히 동네 사랑방 같은 모호가 가장 좋다. 비가 와서 그런지, 연휴라서 그런지 주차 자리도 남아있고, 사람이 별로 없어서 좋다. 비오는 날의 까페는 음악 소리도 더 묵직하게 느껴진다. 가장 좋아하는 창이 보이는 높은 바카라상 자리에 앉아 따뜻한 오트 라떼를 시킨다. 양귀자의 '희망'을 읽으려 가져갔는데 모호 서가에 오랜만에 바카라이 큐레이션 되어있다. 큰일이다. 여기서도 읽고싶은 바카라이, 궁금한 바카라이 너무 많다. 요즘 '적독생활' 이라는 바카라을 읽고 있는데, 이 바카라이 꼭 나같은 사람을 위한 바카라 같다. 세상에 읽고 싶은 바카라이 너무 많고, 특정 분야에 전문가라고 할 건 아니지만 '바카라을 사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당장 읽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읽을 바카라들을 모아두며 집에서 새로운 경이로움을 매일 발견하는 사람들. '츤도쿠'라는 단어도 이 바카라을 통해 처음 알았다.

츤도쿠란 읽으려고 사지만 읽기는커녕 한 번 펼쳐 보지도 않은 바카라들을 집 안 곳곳 쌓아 두기만 하는 행동을 일컫는 말. 또 바카라장이나 협탁에 놓여 언젠가 읽힐 때가 오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바카라들을 뜻한다.

얼마 전 드디어 방바닥에 쌓아두기만 했던 바카라을 바카라장에 정리하면서, 일부는 알라딘에 판매하고, 일부는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려고 몇 상자를 빼두었다. 바카라을 정리하면서 당분간은 아기를 위한 공간이 필요할테니 바카라을 구매하기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지 다짐했었다. 근데 이 바카라을 읽다보니 더 사도 될 것 같은 명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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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모호 서가로 돌아와 여러 바카라등을 쓸어보다, 법륜스님의 '행복'이라는 바카라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요즘의 나는 마음이 부산스럽다. 아주 사소한 일들 때문이다. 남편의 사소한 말투와 행동 때문에 서운해 지는 날들이 많고, 그런 마음이 쌓여 나의 인생과 앞날까지 걱정되는 불안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 전에도, 아침에 일어나서부터도 이렇게 나를 서운하게 하는데 앞으로 육아할 때는 괜찮을까. 앞으로의 나의 앞날은...? 하면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혼자 우울한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일기를 쓰며 이런 마음의 작용을 바꾸어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나에게만 해로운 이 마음을 계속 지니고 지낼 수는 없다. 얼마 전 큰 스트레스로 응급실을 다녀온 뒤로 스트레스 상황은 피하는 게 좋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에 이런 마음가짐은 하나도 좋을게 없었다.


범륜 스님의 '행복'의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이미 다 들어보았고, 알고 있는 이야기들. 하지만 지금 시기에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당연하기 때문에 놓치기 더 쉬운 이야기들. 가장 핵심은 '내 삶의 행복은 남의 손에 쥐어져있지 않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모든 걸 놓을 수 있고, 나의 행복을 취하는 쪽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온전한 행복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내 삶의 주인이제 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나의 행복을 누가 가져다주는게 아니라 내가 만든다는 생각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자기 기대와 고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건 이래야하고, 저건 저래야한다는 바람과 고집을 내려놓지 못하면 환경과 조건에 따라 끝없이 흔들립니다.

-세상일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모든 좋고 싫음은 나로부터 비롯된다. 시비할 게 없다. 좋아하고 싫어함에 내가 속박당하지 않아야 자유로울 수 있다.

-상대의 배경이나 처지를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하고 인정하면 감정의 동요가 없고 화 날 이유가 없다.

-나의 감정을 절대적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감정이란 습관에 의해 형성된 결과물이다. 화를 움켜쥐고 있지 말 것. 상대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상대가 어떻게 하든 그로부터 자유로워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너무 무겁게 과거를 짊어지고 다니지 말 것. 시선을 지금, 여기로. 과거의 영상만 틀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살아있는 지금,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이 순간만이 현재다. 현재에 집중하면 괴로움은 존재할 수 없다.

-지구는 목적을 가지고 공전과 자전을 하지 않는다. 그냥 돈다. 인생에 의미를 너무 많이 부여하지 말자.

-존재는 다만 다를뿐이라는 것을 알아서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열등감과 우월감을 넘어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생주이멸. 머무르는 곳 없이 흩어지고 사라진다. 감정이란 본래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우리 마음이 바뀌지 않는 데 있는게 아니라 망므이 바뀌는 줄 알고 그 변화에 구애받지 않는데 있다.

-상대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세상에 다 갖춘 사람은 없다.

-결국 계산하면 인생에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총량은 비슷비슷하다. 전체를 놓고 보면 이렇게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조금 주고 많이 받는 경우도 있다.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서 고치려고 했나? 금방 고쳐질거라는 기대없이 조언을 할 것. 상대가 내 말을 안들어도 스트레스 받으면 안된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한 것.

-상대가 내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화가 나고 짜증이 올라올 때는 먼저 자기 마음을 고요히 지켜볼 것.

-심리적인 거래를 하지 말 것.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대가를 바라면 그때부터는 원수가 되기 쉽다.

-내가 그어놓은 울타리 안에 갇힌 행복. 한 발만 밖으로 나가도 큰일날 것처럼 예민해진다. 새장에 갇힌 새의 행복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상대의 태도에 따라 내 삶이 흔들린다는 것. 기대고 의지하는 망므은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홀로 설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 오히려 상대에게 도움을 주고, 의지처가 되어 주겠다는 자세. 자기 중심없이 희생하는 사람은 기대하는 망므의 것들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원망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상대를 고치려들기보다 이해하는게 우선. 개선이 필요하면 스스로 깨치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

-상대의 나쁜점 말고 좋은점을 찾기. 감사하는 마음.

-이기려고만 하면 피곤함. 이기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디서 누구와 슬롯생활을 해도 긴장하거나 초조할 필요가 없다.

-인생은 자기 좋을대로, 자기 가치관대로 살면 된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사람마다 반응과 적응이 다르다. 주어진 조건을 바꾸지 않고도 내가 조금만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있는 그 자리에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 '누구 때문에' 라고 남탓하지 말고, 내가 내 인생에 주인이 되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볼 것.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내가 행복하고 남도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길만이 이 행복을 지속시킬 수 있다.

-희생보다 더 좋은 것은 '내가 너를 돕는 것이 나한테 좋다'라는 마음가짐이다. 자리이타. 자기를 이롭게 하는 '자리'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가 둘이 아니라는 것.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삶.

-희생이라는 생각 없이 남을 돕는 것이 나에게도 좋을 때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가는 것.

-모든 시비분별을 내려놓고 안으로 돌이켜 내가 지은 인연을 살펴보는 것. 나만 옳다고 고집해서 상대를 내쳤던 것이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화를 불러온 건 아닌지.

-사물의 '전모'를 볼 줄 아는 지혜가 생기면 우리가 갖고 있던 많은 고뇌가 없어진다.

-내 삶의 시간의 20%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것. 나만 성공하거나 잘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 기꺼이 쓰이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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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바카라을 읽고 나서 단숨에 마음이 평화를 찾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마음에 누가 돌을 던지더라도 마음의 고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선택과 힘인데 그동안 '남탓'을 하며, 너무 출렁이고 있었구나. 다시 한 번 느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고, 내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나의 괴로움을 내려놓고 그 순간에 잡을 수 있는 감사함과 행복을 선택할 것. 과거도 미래도 아닌 숨이 오고가는 지금 여기에서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빗소리를 듣고, 품고있는 아기의 소중함을 느끼고,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족에 감사함을 느낄 것. 무탈하게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적이고, 감사한 일인지 알면서도 자꾸 새장에 갇힌 새처럼 내가 그어놓은 '행복의 정의'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불행한 사람의 프레임을 씌우는 걸 멈추자. 순간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고,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행복한 길을 선택하자. 무엇보다도 내 주관으로 내 가치관대로 내 두 발로 뚜벅뚜벅 행복의 길로 걸어나가자. 다른사람이 무언갈 해줄 때 느끼는 행복은 선물같은 것이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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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모호의 바카라 덕분에 남은 연휴와 주말은 더 기분좋고, 평안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은 라떼를 두고, 지하로 내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쉐이프오브타임 서점. 서점의 분위기, 큐레이션 모두가 너무 좋다. 여기 있는 바카라은 정말 모두가 읽고 싶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글쓰기 수업을 늘 주의깊게 보고 있었는데 당장 다음주에 시작하는 수업이 있다. 클로드코드 강의와 시간이 겹쳐 고민했는데, 출산 전 휴직 기간에 나의 기쁨이 되어줄 것 같아서 문의를 남겨두었다. 이번에 고른 두 개의 바카라은 '밀레니얼 패밀리의 탄생'과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이 바카라은 예전에 읽고, 임신한 친구에게 선물로 줬었는데 이번에 동료의 임신을 축하하며 선물로 주고 싶어서 골랐다. 선물로 주기 전 다시 한 번 스윽 훑어봤는데 여전히 좋다. 나는 그 때보다 커리어의 욕심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나로써 살아가는 일'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삶을 가르치고 싶다. 삶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곳인지. 내가 삶을 즐기고, 누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주말 아침엔 커피를 내리고, 매일 산바카라을 하고, 나만의 서재에서 바카라을 고르고, 친구들에게 엽서를 쓰고, 꽃을 들여다보고, 요가를 하고, 훌렁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보며 삶에는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참 많구나. 를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기만의 삶의 서사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예전에 읽은 바카라에서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우리만의 문화, 우리 집의 문화'라는 내용이 있었다. 나도 나만의 서사와 문화를 쌓아나가며 아이가 자신만의 삶을 살아나가기를 응원해야지.


-아이에게 '엄마와 함께라면 늘 즐거워, 혹은 엄마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와 같은 저어를 심어주고 싶다.

-엄마도 엄마로서의 삶과 슬롯적 지위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그래서 네가 무언가를 원해도 종종 그것을 들어줄 수가 없으니 서운해하지 말라고. 이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우리 가족만의 방식이라고.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도 챙길 줄 아는 삶. 한 개인으로서 단단히 세상에 서고 그래서 더욱 건강하게 서로의 관계가 유지되는 삶.

-모든 변화에는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라도 일정한 슬픔이 있다. 우리가 남겨두고 떠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삶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이전의 삶을 끝내야만 한다. 리사크론


이번 연휴는 부족한 에너지 탓에 어딘가를 가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마음이 들다니 놀랍지만 아이가 만드는 몸과 호르몬의 변화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휴식을 취한다. 덕분에 바카라을 가득 사고, 가득 읽고, 사유하는 주말을 보냈다. 여전히 읽고 싶은 바카라이 쌓여있다. 아 세상에 있는 1억 3000만권의 바카라들이여. 아직 읽지 않은 바카라이 읽은 바카라보다 언제다 더 매력적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남은 바카라을 읽으러 떠나본다. 이번 주말의 만족스러웠던 츤도쿠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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