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음을 견디기

상실에 힘이 되어 준 바카라과 노래

byzeze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는 도대체 어떤 위로가, 어떤 말과 행동이 필요할까.

노련하게 적절한 위로를 건네 마음을 다치지 않게 세심하게 곁에 있어준다는 건 엄청난 능력이다. 혼자 이겨낼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구와 나누기에도 쉽지 않은 시간이다.

아직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나에게 예상치 못하게 다가와 힘이 되어주었던 두 개의 바카라과 두 개의 노래가 있다. 상실을 겪은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길 바라며.


1.

천 개의 바람이 되어 - 김영옥 ​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 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의 사진 앞에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우연히 초대받아서 김문정 감독님과 함께하는 the M.C orchestra 20주년 콘서트를 갔다. 유명한 뮤지컬 넘버들과 웅장한 연주 모두 너무 멋져서 황홀하게 듣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함께 하는 무대가 있었는데, 천사 같은 아이들이 총총총 걸어 나올 때부터 이미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김영옥 배우님이 나오시더니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러주셨다. 담담하게 위로하는 따스한 미소와 함께. 가사의 첫 줄을 들을 때부터 눈앞은 이미 흐려졌는데, 천 개의 바람이 되었다는 그 말이, 빛이 되고 눈이 된다는 그 말이 너무나도 위로가 되었다. 그래 어딘가에 묶여있지 말고, 자유롭게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녀야지. 나는 늘 너와 함께인 거지. 바람과 빛과 눈과 별과 함께. 바람이 불 때마다 너를 생각해야지.


2.

견딜 수 없음을 견디기 - 사랑 살실 애도의 감정을 가누기 위한 심리 수업 ​

40p. 그런 상실을 겪고 나면 인생의 의미에 의문을 품게 된다. 두려움과 불안함이 자주 찾아들고 과도한 근심에 시달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죽음을, 유한성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죽음 현저성’- 이 현실과 씨름하기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감각적 인식과 환경 감수성이 높아져 두려움에 근거한 고통이 샘솟기도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여전히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또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질 때도 있다.


45p. 처음엔 슬픔을 ‘극복’ 하고 싶었지만 나와 함께 애도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것은 내면에서 아우성치는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것. 요컨대 ‘괴로워할 용기’를 내는 것이었다. ‘고통을 겪는다’라는 말은 ‘고통을 바꾸거나 거기에 저항하거나 매달리지 않고 견뎌낼 능력을 갖는 것’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75p. 아름다움과 고통은 공존한다. 행복하려고 슬픔을 피하지 않아도 되고, 슬픔을 느끼려고 행복을 매도할 필요가 없다.


76p. 타당하고 필요한 괴로움을 너무 이르게 끊어내려다 명분 없고 불필요한 괴로움까지 덤으로 얻고 만다. 슬픔을 피하려 들면 슬픔이 옆길로 새서 상실의 마땅한 결과물로 인지할 수 없게 될 위험이 있다. 실존주의 심리치료사 어빈 얄롬의 말대로 ‘고통은 그곳에 있다. 문을 닫아 막으면 고통은 다른 곳으로 들어오려 문을 두드린다.’ 중요한 문제는 슬픔이 우리를 기다려줄지라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가끔은 독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해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찾아오든 그 모습 그대로 내버려 두자. 그러면 우리의 감정이 늘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emot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movere(지나가다)’와 ‘emovere(밖으로 나오다)’ 에서 유래한다. 감정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통과하고, 우리와 타인 사이로 움직인다.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면 감정은 비록 드문드문하고 느릴지라도 반드시 변화한다. 슬픔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통절한 메시지는 이렇다. 에둘러 가는 길은 없다. 돌파할 수밖에.


84p. 슬픔의 강도와 슬픔에 대처하는 능력. 이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우리가 감정에 대처하는 능력은 개별적으로 작용한다. 이 모델의 취지는 슬픔의 강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대처하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면 슬픔의 강도가 때와 조건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변화하면서 그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해도 상관없어진다. 이러한 관점을 취하면 슬픔의 다양한 빛을 엷게 하기보다는 개인적 대인적 자원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둘 수 있다. 사랑이 그러하듯 슬픔은 시간과 공간에 속박되지 않는다. 자연계까 그러하듯 슬픔은 나름의 유기적 리듬에 따라 변화한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86p. 애도는 확장과 수축의 과정이다. 수축은 확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 따라서 수축 자체가 확장의 일부이다. 수축의 순간에는 내가 이렇게 살아 있어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정신이 나약해지고 절망과 공포감에 휩싸인다. 우리는 몸을 옹송그리고 숨을 죽인다. 그런 순간이 잦아들면 우리 자신을 지키고픈 욕구가 생긴다. 수축 후 조금이나마 성장하는 시기에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 확장이 찾아온다. 바깥세상으로 나가 탐구하고 모험하고 마음을 활짝 열어젖힐 의지가 생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신뢰, 안정감, 호기심, 의지, 유대감, 소속감 어쩌면 희망까지 느낀다. 바로 전에는 수축이 우릴 구했다면 이 순간에는 확장이 우릴 구할 것이다.


91p. 자연 만물이 그러하듯 애도는 수축-확장-수축-확장-수축-확장을 반복하며, 이 과정은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감정은 움직인다. 우리 안에서 움직이다가 우리 밖으로 빠져나가 타인에게로 전해진다. 분열이 먼저다. 그 뒤에 재통합이 따라온다. 수축이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96p. 사랑하지 않으면 상실의 슬픔은 없고 사랑하면 상실의 슬픔을 피할 수 없다. 사람들 사이의 공간을 슬픔이 메운다. 집 안에서도 식탁에도 휴가 중에도 교회에도 마당의 그네에도 슬픔의 자리는 있다. 슬픔은 대물림되면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슬픔은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사랑을 반기고 격려하면서 슬픔은 억누르고 감춘다.


99p. 가끔은 존재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시에 슬픔보다 더 두려운 것이 단 하나 있었는데, 내가 없어져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더 이상 샤이엔을 추억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특정한 상태에 있거나 감정을 느끼려 애쓰지 않고 모나처럼 순간순간 현재를 충실히 사는 연습을 했다.


124p. 이렇게 슬픔이 전면으로 나온다 싶으면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순간에 집중해도 좋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 그러면 자기 돌봄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애도하는 이들에게 자기 돌봄은 아주 중대하다. 자신을 돌보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자신과 남들을 위하는 관대한 행동이다.


142p. 폭풍에서 나오면,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149p.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예전의 일상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새로운 일상. 비슷한 것을 되찾더라도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억눌리지 않은 슬픔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다. 공과금을 납부하고, 출근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장을 보며 현실적인 생활로 돌아가면 슬픔에 휘둘리는 정도가 약해진다. 연습을 통해 생활과 애도의 균형을 맞추는 법을 배울 수 있다.


189p.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의무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이 바카라에서 키르케고르는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욕심 없고 가장 자유로우며 가장 실실한 사랑, 소멸하지 않으려 고통을 감수하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아무런 보답이 없기에 욕심 없는 사랑이다. 고인을 아무리 외쳐 부른 들 우리가 염원하는 방식의 화답은 들을 수 없다. 죽은 자를 계속 사랑해야 한다는 어떤 강압도 의무도 없기에 자유로운 사랑이다.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헌신이 필요하기에 신실한 사랑이다.


193p. 슬픔과 무중에 고르라면 나는 슬픔을 택하겠다.


250p. 우리의 삶도,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삶도 유한하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때 만물에 대한 감사함이 더욱 깊어진다. 우리는 삶의 활기와 다채로움에 닿고, 깨어나기 시작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우리도 언젠가 죽는다. 우리는 순간순간이 비밀스러운 보물 상자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쉬는 숨 하나하나가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 일 초 일 초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삶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덧없지만 유일한 한 가지는 바로 이 순간이다. 바로 여기, 바로 지금. 우리는 평생토록 이것만을 가질 수 있다. 마음의 짐이 가벼워지는 동시에 무서운 일이다.


상실을 위로해 주는 바카라을 찾아 헤맸던 시기가 있다. 어디서든 위로를 받고 싶어서. 이 바카라은 잠시 숨 돌리러 떠난 당일치기 강릉 여행에서 들린 바카라방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지금의 햇살이를 만나기 일주일 전, 상처를 여며주라고 선물처럼 건네준 것 같았다. 볼 때마다 그때가 생각나 마음이 무너지고 힘들어서 한 장 한 장 겨우 읽어 내려갔던 바카라. 겨우 끝 장을 덮었을 땐 그냥 나를 토닥여주고 싶었다. 잘 견뎌왔다고, 잘하고 있다고. 처음 그 시기의 나에게 이 바카라이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조금은 덜 슬펐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애도는 평생 가는 감정이니 지금이라도 이 바카라을 만나서 다행이다 싶었다. 상실로 인한 고통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이 세상은 그것을 병으로 간주하고 약으로만 치료하려 한다. 슬픔을 묻어두려만 하고, 웃어도 되나 싶은 자바카라감에 시달리고, 불안감과 두려움에 잠 못 잤던 날들이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건강히 극복해내고 있다. 요즘도 매일 출근길에 푸르르고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보면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일주일에 3일은 울면서 출근한다. 그냥 보고 싶고, 슬픔이 새어 나온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지 못한 미안함에. 그렇다고 하루 종일 슬픔에 묻혀 아무것도 못하는 수축의 시간은 아니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산바카라을 하고, 웃고, 운동을 한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확장의 감정도 생겨난다. 언제 또 강도가 10으로 올라갈지, 수축의 과정이 올 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한 시간에도 감정의 파도를 잘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기를.



3.

좋지 아니한가 - 유다빈 밴드 ​

우린 노래해. 더 나아질 거야.

우린 추억해 부질없이 지난날들, 바보같이 지난날들.

그래도 우린 좋지 아니한가.

바람에 흐를 세월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우린 태어났으니까.



조금 뜬금없게 느껴지는 선곡이려나. 웃기게도 또 어느 출근 날. 이 노래를 듣다가 정말 엉엉 울었다.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우린 태어났으니까’라는 그 말이 엄청나서. 내가 울고만 있었다면 햇살 이를 다시 만날 수 없었겠지. 정말 좋지 아니한가. 우린 더 나아질 거야. 울고만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우린 태어났으니까.


4.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의말, 그리고 폭풍우 - 언제나 기억해​

언젠가 되돌아보면 깨닫게 될거야.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렇지만 얼마나 잘해왔는지.


이 바카라은 어떤 구절을 적어야 할 지 모르겠다. 바카라 자체가 위로였기 때문에.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의 말을 좋아한다. 블루도어북스에 갔을 때 쥐어주신 바카라이어서 읽었다가 한구절 한구절 너무 좋아서 소장해서 읽고 또 읽었다.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힘이 될 거라는 말에 어떤 말을 들려줄까, 어떤 동화를 읽어줄까 고민하다가 이 바카라을 녹음해서 반복해서 들려줬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가 여러 문장으로 쓰여있는 말. 나에겐 너무 뜻깊은 바카라이었다. 그 일을 겪고, 용기를 내 다시 블루도어북스를 찾아간 날이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의 말, 그리고 폭풍우. 언제나 기억해라는 두 번째 바카라이 나왔다. 폭풍우를 겪고 나온 나에게 필요한 바카라이었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꾹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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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이 바카라과 음악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