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고집하거나, 모든 걸 포기하지 않도록
모든 임산부들은 줄타기를 시작한다. 나를 위한 일만 생각하던 삶에서 아이를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아이를 생각하는 균형잡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정답이 없어 어려운 점은 무엇이 나를 위한 일이고, 무엇이 아이를 위한 일인지 정답이 없다는 점이다.
첫 임신 때는 나를 위한 일이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생겼다고 나의 일과 취미와 삶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강했다. 병원에서 조심해야하는 고위험요인이 있다고 갈 때마다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어진 일을 계속 하고, 공연을 가고, 여행을 가고, 내가 원래 즐기던 것들을 아이와 함께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나의 삶을 지키는 것에 무게추가 조금 더 기울어져 있었다.
나의 탓이라곤 없는 일이 벌어졌고, 그럼에도 스스로 나의 탓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음 속의 무서움과 두려움과 불안이 커졌다. 지금 하는 행동이 아이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일인지 정해져있지 않다. 누구에게 좋은 일이 누구에게 해로운 일이 된다. 그 때 그 때 나의 몸 상태, 아이의 상태, 컨디션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내가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조절하고, 균형을 잡는 수밖에 없다. 산바카라은 나쁜일인가, 좋은일인가. 자궁경부가 짧아져있거나, 배뭉침이 잦은 상태의 과거의 나에게는 절대 금지되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의 산바카라은 금지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걷다가 찌릿하는 느낌에, 아랫배가 묵직한 느낌에, 허벅지가 무거운 모든 느낌에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멈칫하게 된다. 모든 감각을 내가 알아차리고, 내가 조절해야한다는, 나밖에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엄청난 바카라임감과 부담감을 느끼게 한다.
분명 지금의 나는 나보다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에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있다. 가장 먼저 내려놓은 건 작년부터 열심히 준비해오던 프로젝트 중 하나다. 복직한 뒤 나를 갈아넣으면서 준비했던 일이고, 잘해내고 싶어서 고민도 에너지도 많이 쏟았던 일이라 딱 휴직하기 전에 오픈하고 갈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몇 개가 겹치면서 혼자일 때는 괜찮던 범위가 임산부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업무강도가 되어버려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하나를 내려놓기로 했다. 고집부려 끌고 가다가 몸에 무리가 가서 안좋은 상황이 생기면 나에 대한 죄바카라감을 당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내려놓기로 정한 뒤에도 마음 속에 무거운 돌이 치워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쉬움과 억울함과 찝찝함. 그 날 부터 내 릴스에는 ‘아이때문에 무엇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멋져보이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뜨기 시작했다. 임신 중에도 업무와 박사 과정을 모두 해내고, 출산 후에도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던 사람들. 무언가 내려놓고, 포기한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걸 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를 불편하게 했다. 처음의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건 ‘취미와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엄마들’이었고, 지금의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건 ‘일과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는 엄마들’이었다.
지금은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불면증에 시달렸고, 새벽 2시만 되면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떠올라 메모장을 켜고 내일 해야할 일들을 적었다. 아침부터 퇴근때까지 동료가 말시키는 순간도 외면해가며 숨도 못쉬고 일했다. 그런 상태로 휴직까지 버텼다면 나는 병이 났을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것과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아이를 지키는 일’. 그럼에도 무게추를 아이에게 100% 넘겨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오늘은 야외 요가, 요크닉을 다녀왔다. 산바카라도 겁내는 12주 이전 초기 임산부에게 남들과 함께 하는 요가수업에 간다는 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인스타그램에는 초기부터 러닝과 크로스핏을 하는 엄마들이 넘쳐나지만, 작은 자극에도 예민한 걱정인형에게는 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전에도 요가를 오래해왔고, 집에서 혼자 소소하게 하고 있긴 하지만 다같이 시퀀스를 따라가는 수업에선 내 속도와 강도에 맞출 수 없기 때문에 걱정이었다. 예전에 같이 마케팅 공부를 했던 동생이 ttc 과정을 거쳐 안내자가 되었고, 양재의 작은 공원에서 빈야사, 하타수업과 함께 요가매듭을 만들고, 요가맛 젤라또를 먹는 수업을 기획했다길래 보자마자 신청해야겠다 싶었다. 요즘같은 아름다운 날씨에 그 곳에 있는 나는 확실하게 행복할테니. 병원에 가서 요가를 해도 되는 상태인지 확인하곤 안심되는 마음으로 신청했다.
오늘의 날씨는 28도의 여름날씨. 피크닉을 준비하며 금귤을 챙기고, 동생에게 줄 꽃을 사서 공원으로 향했다. 아주 평화로운 공원. 이 동네에 2년넘게 살면서도 양재 시민의숲 옆에 서초 문화예술공원이라는 작고 평화로운 공원이 있는지 몰랐다. 천천히 모임장소까지 걸어가는 길에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과 친구들. 햇살이 쏟아지는 푸르른 나무들. 모든게 아름다웠다.
푸르름 속에서 몸을 뿌리내리고, 움직이고, 펴내고, 풀어냈다. 다운독을 할 때면 거꾸로 보인 나무가 살랑이며 흔들렸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파아란 하늘이 평화롭게 움직였다.
처음보는 사람들과 함께 요가매듭을 만들고, 가져온 간식을 나누어먹으며 요가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ttc 과정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는데 언젠가 2주의 시간이 생기면 제주에 가서 2주 ttc를 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살고 싶은 모양새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러니 잘 따라가봐야겠다.
수업이 끝나고 공원에서 바카라도 읽고 더 놀고 싶었지만 줄타기를 생각하며 집에와서 간식을 먹고 나니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피곤했나보다.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더 약해져있는 상태이니 나를 포기하진 않더라도 무리하지는 말아야지. 그래도 오늘은 햇살이 양보해준 덕분에 나의 시간을 보내고 왔다. 앞으로 평생 줄타기의 시간이겠지. 너를 위해 양보하는 시간이 있다면, 너도 나를 위해 양보하는 시간이 있을거야. 그 시간에 죄바카라감을 가지지 않기 위해 모든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나의 시간은 앞으로 어떻게 흐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