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계속 돌볼 것인가

D-31 │ 슬롯적 가치 디자인까지 31일

by컬러코드

새로 만들어진 공원에 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벤치는 깨끗하고,

안내판은 선명하며,

시설물은 반짝입니다.

나무도 가지런히 심어져 있고,

공간 곳곳에는 세심하게 디자인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런데 몇 년 뒤 다시 찾아가면 전혀 다른 모습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안내판의 글씨는 빛이 바랬고,

시설물 일부는 고장 난 채 남아 있으며,

처음에는 예뻤던 화단에는 잡초가 자라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참 좋았는데….”

그렇다면 디자인은 언제 끝난 걸까요?


우리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할 때 완성되는 날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품이 출시되는 날,

공간이 문을 여는 날,

시설물이 설치되는 날,

서비스가 시작되는 날.

사진도 대부분 그날 찍습니다.

가장 깨끗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벽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보고서에는 멋진 완성 사진이 남습니다.

하지만 시민이 경험하는 디자인은 그 사진 속 모습만이 아닙니다.

시민은 그 공간을

1년 뒤에도 사용하고,

3년 뒤에도 사용하며,

어쩌면 10년 뒤에도 사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디자인을 볼 때 새로운 질문 하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누가 계속 돌볼 것인가?”


공원에 예쁜 꽃밭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완성된 순간에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꽃은 자라고,

계절은 바뀌고,

물을 주어야 하며,

가지도 정리해야 합니다.

누군가 계속 돌보지 않으면 처음의 모습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꽃밭을 디자인할 때부터

누가 관리할 것인지,

관리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지,

계절이 바뀌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관리도 디자인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안내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정확했던 정보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집니다.

시설의 이름이 바뀌기도 하고,

운영시간이 달라지기도 하며,

동선 자체가 변경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내판을 수정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면 어떨까요?

정보 하나를 바꾸기 위해

전체 안내판을 다시 제작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만들 때는 멋졌지만,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디자인이 된 것입니다.


좋은 디자인은 오늘의 문제만 해결하지 않습니다.

내일 바뀔 가능성까지 생각합니다.

정보가 바뀌면 쉽게 수정할 수 있는가?

부품이 고장 나면 교체할 수 있는가?

청소하기 쉬운가?

관리자가 사용법을 이해할 수 있는가?

운영비가 지나치게 많이 들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완성 사진에도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질문들이 디자인의 품질을 결정합니다.


공공디자인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공공시설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시민이 오랫동안 사용합니다.

사업이 끝났다고 시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업을 추진했던 담당자가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도 있고,

운영주체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때도 공간과 서비스는 계속 작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공공디자인은

특정한 사람의 열정에만 의존해서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누가 담당하더라도 운영할 수 있는 구조,

관리방법이 기록된 시스템,

예산과 인력이 바뀌어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서비스도 같습니다.

처음 서비스를 만들 때는 모두가 열심히 참여합니다.

회의도 하고,

교육도 하고,

매뉴얼도 만듭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담당자가 바뀌면

처음의 취지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했는데 지금은 안 합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때 문제는 디자인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지속시키는 구조가 부족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비스디자인에서 결과물만큼 중요한 것이

운영체계입니다.

누가 담당하는가.

어떤 기준으로 관리하는가.

문제가 생기면 어디에 기록하는가.

사용자의 의견은 어떻게 다시 반영되는가.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시스템으로 바뀌지 않으면

좋은 디자인은 오래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면 기업의 브랜드도 그렇습니다.

로고를 새롭게 만들고,

패키지를 바꾸고,

홈페이지를 새로 만드는 것은 비교적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를 정말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직원들이 같은 약속을 지키는 것,

고객에게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

시간이 지나도 브랜드의 기준을 유지하는 것.

브랜딩은 한 번 멋지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지켜 가는 일입니다.


사람의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처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마음을 오래 지키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꾸준히 연락하고,

약속을 지키고,

관계를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좋은 관계가 한 번의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지지 않듯

좋은 디자인도 한 번의 멋진 결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어쩌면 슬롯에는

만드는 사람만큼 돌보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공원의 나무를 관리하는 사람,

고장 난 시설을 고치는 사람,

오래된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사람,

서비스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확인하는 사람.

그들의 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디자인과 관계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있기 때문에 디자인은 계속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디자인의 성과를 평가하는 시점도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공 직후만 보는 것이 아니라,

1년 뒤에도 잘 사용되고 있는지,

3년 뒤에도 시민에게 필요한지,

관리하기 어려워 방치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좋은 디자인의 진짜 모습은 시간이 지나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에 오래된 공공시설을 만나면

새것과 비교해서 낡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한번 바라보세요.

오랜 시간 잘 관리되어 여전히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면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 있습니다.

처음 만든 사람의 디자인뿐 아니라,

그 이후 수많은 사람이 이어온 돌봄의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은 만드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건네진 뒤부터

진짜 시간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디자인을 시작할 때

마지막에 꼭 하나의 질문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가 떠난 뒤에도 이것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의 깨달음]

좋은 디자인은 완성되는 날만 아름다운 디자인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가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돌봄의 방법까지 남겨 두는 디자인입니다.



[오늘의 사유]

오늘 자주 이용하는 공공시설 하나를 바라보세요.

처음 만들어졌을 때보다 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다면 생각해 보세요.

“이것을 지금까지 누가 돌보고 있었을까?”

우리가 보지 못했던 디자인의 주인공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함께 사유해 볼 질문]

우리는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누가 만들 것인지만 결정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보다 더 오래 필요한 질문,

“누가, 어떻게, 계속 돌볼 것인가?”까지 디자인하고 있나요?




English Summary

Who Will Keep Taking Care of It?

Design does not end when a product is launched, a space opens, or a public project is completed.

Information changes, facilities age, people move on, and organizations change.

Good design anticipates what happens afterward by considering maintenance, operation, updates, responsibility, and continuity.

Completion is not the end of design. It is the beginning of its life in use.


Keywords

Design Management
Maintenance
Service Operation
Sustainability
Public Service Design
Design Continuity
Social Value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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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는 질문에서 시작되고, 디자인은 변화에서 완성된다.

디자인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을 변화시켰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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