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디자인
요즘은 학교보다 현장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방학을 맞아 시민공감디자인단을 운영하며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공공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고, 현장교원으로서는 학생들과 AI를 활용한 융합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의 수업과 프로젝트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히 다양한 분야의 비전공자들을 만나면서 더욱 그렇다.
오랫동안 한 분야를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놀랄 때가 많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생활 속 불편함을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전문적인 디자인 용어보다 삶의 경험에서 나온 한마디가 더 큰 통찰을 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디자인이 결국 예쁜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최근 시민공감디자인단 활동을 준비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공공의 문제는 전문가 몇 명이 회의실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그 공간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경험과 목소리가 함께해야 비로소 현실적인 해결바카라이 나온다.
길을 찾기 어려운 안내체계, 이용하기 불편한 공공시설, 안전에 대한 불안감 같은 문제들은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의 공공디자인은 결과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좋은 디자이너란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연결하고,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진행하는 AI 융합디자인 수업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디자인 교육이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배우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으로 바뀌고 있다.
AI는 이미 이미지를 만들고,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하지만 같은 AI를 사용해도 결과는 모두 다르다.
결국 차이는 질문에서 나온다.
어떤 문제를 발견했는가.
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
누구를 위해 디자인하는가.
좋은 디자인은 결국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은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컴퓨터 아카데미에서 디자인 멘토로 활동하면서도 흥미로운 변화를 많이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디자인 비전공자가 디자인 분야에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배우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표현 기술을 익히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AI는 그 장벽을 상당 부분 허물고 있다.
오히려 비전공자들은 기존 방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질문하고 더 과감하게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AI를 활용하는 과정에서는 툴을 얼마나 오래 다뤘는지보다 문제를 얼마나 잘 정의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사용자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만들고 싶은지가 결과를 결정한다.
어쩌면 AI 시대는 비전공자들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시대인지 모른다.
동시에 전문 디자이너들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요즘은 AI로 만든 이미지와 콘텐츠가 넘쳐난다.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이제는 비슷한 결과물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디자인의 진짜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예쁜 이미지를 만드는 것보다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AI가 디자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디자인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 묻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AI가 디자인을 해줬으니 출력만 해달라는 곳이 있는 반면, 디자인비가 더 정확하게 측정되고 디자인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여성기업 대표로 말할 수 있는 현장 목소리이다.
생각해보면 올해는 나에게도 의미 있는 변화가 많았다.
감사하게도 지난달, 2009년부터 평생회원으로 활동해 온 한국기초조형학회의 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지난달 말에는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와 전시회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서도 디자인 교육과 AI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자와 교육자들이 AI와 미래 교육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흥미롭게도 결론은 기술보다 인간에 가까웠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다.
나 역시 그 부분에 깊이 공감했다.
사실 이런 고민은 최근 참여하고 있는 AI기하급수 최고경영자과정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일이면 마지막 수업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과정을 마치며 남은 것은 기술보다 관점이었다.
AI는 정말 많은 답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예전에는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경쟁력이 있었다.
지금은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경쟁력을 가진다.
그리고 앞으로는 좋은 질문을 만드는 사람이 가장 큰 경쟁력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좋은 질문은 바카라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걷고,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학생들과 토론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바카라을 읽고, 현장을 방문하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유인 것 같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기술에 끌려다니게 된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디자인은 형태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해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질문이 있다.
하지만 질문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좋은 생각도, 좋은 아이디어도, 좋은 디자인도 결국 실행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시민들과 현장을 걷고, 학생들과 실험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바카라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은 실행하기 위해서다.
거창한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은 실천 하나, 작은 도전 하나, 작은 기록 하나가 쌓이면서 변화가 만들어진다.
오늘 오랜만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그 작은 실천 중 하나일 것이다.
사유는 생각에서 끝날 때보다 행동으로 이어질 때 더 큰 힘을 가진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특별한 재능보다 꾸준히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경쟁력은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준 유경준 디렉터님께 감사합니다*^^*
깊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결국 실행하는 것.
나는 앞으로도 그 과정을 기록하려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유의 디자인' 이고, 결국 모든 변화는 실행의 힘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