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례가 되자, 예외가 필요해졌다
대표의 연임을 반대하던 사람이 있다고 해볼게요.
한 사람이 오래 자리를 차지하면 조직이 굳어진다며,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이 대표를 맡았고, 어느덧 임기가 끝나가요.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이 달라요.
진행 중인 사업도 많고, 후임자가 곧바로 맡기에는 일이 복잡하거든요.
“지금 사람이 바뀌면 혼란만 생깁니다.
조직을 위해 제가 한 번 더 맡는 게 맞아요.”
실제로 그럴 수도 있어요.
다만 궁금한 게 생겨요.
앞선 대표가 같은 이유를 댔다면, 이 사람은 연임에 동의했을까요?
자리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일은 낯설지 않아요.
남이 권한을 쥐고 있을 때는 그 권한을 제한할 방법부터 찾지만,
내가 맡으면 제대로 일하기 위해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고 느끼죠.
남의 보상에는 자격을 묻다가도,
내 보상을 이야기할 때는 그동안의 고생이 먼저 떠오르고요.
우리는 남의 행동보다 자신의 사정을 훨씬 자세히 알아요.
얼마나 고민했고, 무엇을 포기했으며, 어떤 부담을 견뎠는지 알고 있죠.
그래서 내 선택에는 설명할 것이 많아요.
하지만 설명할 사정이 있다는 것만으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겠죠.
그 사정을 남에게도 같은 무게로 받아들였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본인도 자신의 설명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단순히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라면 스스로도 조금은 불편할 거예요.
그런데 ‘내가 남아야 조직을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면,
물러나는 일이 오히려 무바카라임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욕심을 감추려고 거짓말을 하는 단계를 넘어서는 거죠.
자신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같은 방향이라고 확신하는 거예요.
특히 오랫동안 공정함이나 정의를 강조해 온 사람이라면
이런 확신을 의심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어요.
좋은 일을 해왔고, 주변에서도 인정받았으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개별 행동을 따져보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라는 믿음이 판단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죠.
내가 권한을 가지면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내 영향력이 커지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내 자리를 문제 삼는 사람은 좋은 일을 방해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하죠.
이 과정에서는 자신의 희생도 강력한 근거가 돼요.
밤을 새웠고, 비난을 견뎠고, 다른 기회를 포기했으니
이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느껴요.
그 노력은 사실일 수 있어요.
다만 얼마나 애썼는지와 무엇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는 따로 살펴야 해요.
남의 일에서는 쉽게 구분하던 두 가지가 자신의 일이 되면 한데 섞이곤 하죠.
이럴 때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질 사람은 과거의 자신이 되어버립니다.
지금은 조직을 위한 바카라임이라고 설명하는 일을,
예전의 나는 권력욕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요?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해명에
“그래서 공정하다는 건가요?”라고 되묻지는 않았을까요?
물론 과거의 생각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에요.
직접 경험한 뒤에야 판단이 너무 단순했다는 걸 알 수도 있어요.
원칙도 현실에 맞게 고칠 수 있고요.
다만 생각이 달라졌다면, 그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돼야 해요.
내가 연임할 이유를 인정했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후임자에게도 같은 기회를 줄 수 있어야겠죠.
내 고생을 보상의 근거로 삼았다면,
다른 사람의 노력도 같은 방식으로 살펴야 하고요.
무엇보다 같은 기준을 적용한 결과 내 자리가 줄어들거나 내 몫을 양보해야 할 때,
그 결과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내 사정이 복잡하다는 걸 알게 됐다면,
남을 판단하던 기준도 돌아봐야 해요.
기준은 그대로인데 나만 예외가 됐다면,
달라진 건 이해의 깊이가 아니라 내 몫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