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들이 더 시끄럽게 떠드는 세상

우리는 정말로 알고 있을까요?

by황준선

세 줄 요약

대답할 수 있다는 것과 알고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정보가 넘칠수록 남의 답을 내 생각처럼 말하기 쉬워집니다.

내가 어디까지 알고, 어디부터 모르는지 구별하는 데서 진짜 생각이 시작됩니다.


“성장이 뭐예요?”

이 질문에는 꽤 쉽게 답할 수 있습니다.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조금씩 발전하는 것?


그런데 한 단계만 더 깊게 물어보면 질문이 확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나아진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일까요?
더 어려운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남의 인정을 덜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쯤 되면 대답이 어려워지죠.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답처럼 들리는 문장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대답할 수 있다는 것과 아는 것은 다릅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검색하면 정의가 나오고,
영상을 보면 전문가가 설명해 주고,
AI에게 물으면 몇 초 만에 꽤 그럴듯한 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답을 얻기가 너무 쉬워졌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내 말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성공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공한 뒤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지는 잘 모릅니다.


좋은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안정과 자유가 충돌하면 무엇을 선택할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문장은 있는데, 그 안에 내가 없는 셈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전에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부터 배웁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답을 오래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내 생각처럼 느껴집니다.


내 생각은 “왜?”를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생각을 확인하는 데 어려운 질문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왜?”

한두 번만 더 물어보면 됩니다.


왜 성공하고 싶은지.
왜 그 직업이 좋은지.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은지.
왜 지금의 삶을 계속 살고 싶은지.


처음에는 답이 잘 나옵니다.

그런데 질문이 조금만 깊어지면 익숙했던 문장들이 하나씩 사라집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말이 멈춥니다.


그 순간이 주는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해요.

그곳이 바로

남에게서 빌려온 답이 끝나고,

내 생각을 시작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모르겠습니다”는 생각보다 정확한 답입니다

우리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무언가 부족해 보이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빈칸이 생기면 빨리 채우려고 합니다.

어디서 들었던 말,
바카라에서 읽은 문장,
슬롯가 좋은 것이라고 정해 둔 기준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너무 빨리 답을 채워 버리면
정작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그것은 생각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까지는 알고,
여기서부터는 모른다는 경계를 발견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정보가 부족했던 시대에는
답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답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답이 정말 내 생각인지 구별하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그저 들어 본 것인지,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모르는지 아는 것.


어쩌면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지성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것이 '나의 대답인지'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이 글의 원문은 eigen knot (아이겐 노트) 뉴스레터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eigenknot.com/devil-is-in-detail-knot-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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