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더 이상 대학을 보지 않는다

오래 준비한 사람이, 더 이상 유리하지 않은 이유

by황준선

성실함이 보상받던 시대가, 조용히 저물고 있어요


자기소개서를 써본 사람은 알아요.

이름 아래 가장 먼저 채우는 칸이 학력이라는 걸요.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가, 나를 설명하는 첫 문장이 되는 그거요.


SK하이닉스가 일부 채용에서 그 칸을 지웠어요.

그리고 반응은 둘로 갈렸어요.

"드디어 평등의 문이 열렸다"는 사람과,

"뽑고 보면 어차피 명문대 출신일 텐데"라는 사람.


저는 이 결정을 선의로 읽지 않아요.

기업은 마음이 착해서 채용 방식을 바꾸지 않거든요.

기업은 돈이 되면 바꿔요.


그러니 칸을 지웠다는 건 적어도 이런 뜻이에요.

이제 대학이라는 필터만으로는 원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어렵다는 판단이요.



물론 칸 하나 지운다고 학벌 슬롯가 단번에 끝나진 않아요.

합격자 명단은 여전히 익숙한 이름들로 채워질지도 모르죠.


그래도 저는 이 변화가 가진 의미는 꽤 크단 생각이 듭니다.

'학력', '채용' 등을 형성하던

강력한 믿음이 기초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좋은 대학은 지금도 좋은 신호예요.

오래 앉아 공부했다는 증거이고, 치열한 경쟁을 견뎠다는 증거죠.

바로 성실함.


다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AI가 답을 대신 써주는 세상에서,

실력의 무게중심이 옮겨갔거든요.


얼마나 많이 아느냐에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아느냐로요.


AI를 쓰는 방식만 봐도 알아요.

어떤 사람은 "정리해줘"라고 한 번 묻고 끝내요.

더 똑똑한 검색 창 정도로 쓰는 거죠.


반면에 어떤 사람은 자료를 붙이고,

틀을 잡아주고,

나온 답을 의심하고,

다시 시켜서 결국 쓸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요.


출발선은 같았는데 도착점이 달라요.

이제 회사가 찾는 사람은 후자예요.

그리고 학력은, 이 차이를 잘 보여주지 못해요.



바로 여기서, 앞의 이야기와 우리가 오래 외면해온 장면이 만납니다.


우리는 청년에게 줄곧 "준비하라"고만 말해왔어요.

대학, 대학원, 인턴, 자격증...

그 긴 통로는 무엇을 길러낼까요.


정답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길러내요.

하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 서는 사람은, 잘 길러내지 못해요.


회사가 더는 학력만 보지 않겠다는 건,

이 긴 준비가 길러낸 능력이 이제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해요.


긴 통로를 다 지나면, 첫 출근이 스물여덟이에요.

가장 신선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기를,

이력서를 채우는 데 거의 다 써버려요.


스물여덟에 처음 명함을 받은 사람을 떠올려봐요.

십 년 가까이 '아직 준비 중'이라는 문장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에요.


스물둘이었다면 당연하다는 듯 던졌을 질문도,

이제는 잘 던지지 않아요.

틀리지 않는 법을 너무 오래 연습했거든요.



사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 흐름은 자연스러워요.

한국 슬롯는 오래도록 '성실함'을 칭찬해왔어요.

참고, 따르고, 끝까지 해내는 사람을 좋은 인재라 불렀죠.

그건 정답이 정해져 있던 시대의 미덕이었어요.


그런데 정답이 자꾸 바뀌는 시대에는 다른 힘이 필요해요.

모르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고, 엉뚱한 것들을 연결해보는 마음.

심리학에서는 이걸 '개방성'이라고 불러요.


아직 익숙한 방식에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에게

오히려 더 잘 보이는 능력이에요.

너무 잘 길든 사람보다, 아직 덜 길든 사람이 귀해지는 순간이 오고 있어요.



SK하이닉스의 결정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어쩌면 한 회사의 작은 실험으로 끝날지도 몰라요.


그래도 이 결정은 불편한 질문 하나를 남겨요.

우리는 그동안 청년에게 무엇을 시켜온 걸까요.


가장 빛나는 시기를 '준비'라는 이름으로 묶어두는 사이,

세상은 이미 다른 걸 묻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당신은, 어떤 문제를 풀 수 있나요?
시험 말고, '진짜' 문제를 풀 수 있나요?


더 긴 준비가 답이 아니라는 건,

청년보다 회사가 먼저 알아챘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청년에게,

조금만 더 준비하라고 말하고 있는 현실이죠.

그런 글을 담았습니다.


https://eigenknot.com/ai-era-degree-requirement-knot-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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