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패스 논란, 박탈감은 전염된다

아이는 새치기를 물었고, 어른은 가난을 답했어요

by황준선

며칠 전, SNS에서 한 게시글이 화제가 됐어요.

롯데월드에 다녀온 한 분이 쓴 글이었거든요.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는 동안,

매직패스를 가진 사람들이 옆 통로로 먼저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고요.

그 장면을 본 아이가 물었대요.


"엄마, 저 사람들은 왜 새치기해?"

그리고 글쓴이가 이렇게 답했대요.


"엄마가 무능력해서 미안했다."

"매직패스를 좀 없애줬으면 좋겠다."

매직패스가 '서민 박탈감'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로 번져갔고요.


저는 이 글을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했어요.

처음엔 무슨 저런 요구를 하지? 참 진상이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며칠이 흐르고 나니까, 글의 무게중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게 느껴졌어요.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아이는 박탈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어요.


아이가 한 말은 "새치기"였어요.

줄을 먼저 선 사람이 먼저 들어간다는,

아이가 알고 있는 단순한 규칙이 깨진 장면을 본 거예요.


그러니까 그건 가난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줄을 향한 질문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어른이 꺼낼 수 있는 답은

사실 여러 갈래로 열려 있었어요.


"저건 새치기는 아니야. 놀이공원이 따로 만들어둔 규칙인데,

돈을 더 내면 먼저 탈 수 있게 해 놓은 거거든."


"저분들은 시간을 아끼고 싶어서 추가로 돈을 낸 거 같아."


"엄마는 그 돈까지는 쓸 필요가 없다고 봤어. 그래서 그냥 줄을 서는 쪽을 택한 거야."


세 답의 공통점이 보이세요?

하나는 규칙을 알려주고, 하나는 상대의 마음을 짚어주고, 하나는 우리의 선택을 설명해 줘요.


어느 쪽이든 아이는 어른의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한 조각씩 배워가요.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

그 시장이 늘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일단 우리도 그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돈을 같은 방식으로 쓸 필요는 없다는 것까지요.


여기서 멈췄다면, 그 짧은 대화는 작은 슬롯 교과서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글쓴이가 고른 답은 이 세 갈래 어느 쪽도 아니었어요.

"엄마가 무능력해서 미안했다."


이 답은 규칙도, 상대의 마음도, 우리의 선택도 설명하지 않아요.

대신 부모 자신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만 정확하게 설명해요.

그리고 그 감정을 그대로 아이의 손에 쥐여줘요.


이 한 줄이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가 보고 있던 그림은 단순했어요.


줄과 옆 통로. 그게 다였거든요.


그런데 답을 듣는 순간, 그림이 다시 그려져요.

이제 아이의 눈에는

'돈이 없어서 줄에 묶여 있는 우리'와

'돈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는 저들'이라는 두 그룹이 보이게 돼요.


박탈감이 매직패스에서 온 게 아니에요.

어른의 답에서 처음 만들어진 거예요.


부모가 진짜 미안해야 할 일은,

매직패스가 없었던 게 아니라

매직패스 앞에서 그 답을 골라버린 짧은 한순간일지도 몰라요.


이 글이 어딘가에 가닿아서,

다음에 어느 아이가 "저 사람들은 왜 새치기해?"라고 물을 때,

그 곁의 어른이 조금 다른 답을 꺼내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부모가 정작 길러줘야 할 힘은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돈이 없을 때 없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힘.

그리고 돈이 있을 때도 자기 기준으로 쓸 곳을 가려낼 줄 아는 힘.


이 두 가지만 단단하다면,

아이는 매직패스 옆에서도 자기 자리를 잃지 않아요.


현상 뒤에서 본질을 읽어야만 진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게 eigen knot가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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