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3

by영주












매일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시는 이유에 관하여






"커피를 자주 마시네요. 거의 매일 드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많이 마시지는 못하는데, 매일 한 잔씩은 마셔요. 그런데 그게 진짜 행복해요. 그 한 잔이 입에 맞으면 더 행복하고요. 사장님은 모르시겠지만."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에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커피를, 그것도 카페라테를, 그것도 따뜻한 카페라테를 매일 마시게 되었는지.





대여섯 해 전쯤 마음이 아팠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 전염되었던 걸까. 두어 해 지나 몸이 아팠다. 급하게 몸을 고치면서 마음까지 돌봐야 해서 분주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약과 함께 '매일 바깥'과 '매일 햇볕'을 처방했다. 나가서 걸으라고, 햇빛을 보라고.





원아와 아이가 온라인 게임으로, 학교로 가면 집은 곧 동굴이 되었다. 해가 잘 들고, 습하지도 않고 건조하지도 않고, 있어야 할 것이 모두 제자리에 있는 밝고 쾌적하고 단정한 동굴. 그 안에 나는 혼자 어둡고, 눅눅하고 진득했다. 제자리가 없는 것은 나뿐인가 싶었다. '나가라니. 밖으로 나가라니. 누운 몸 하나 일으키기가 이렇게 버거운데, 걸어서 나가고 나가서 걸으라니.' 끝낼 수 없는 숙제와 함께 밤을 맞아 버린 아이의 마음이 이럴까. '대체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그때부터였다. 카페에 가게 된 것이. 목표도 목적도 없이 정처 없이 걷는 것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아주 즐거이 무작정 걷지만, 그때는 그것만큼 멍청해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시간을 허비하기 싫었다. 남 보란 듯이 거창한 것들을 잘해서 우쭐대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내게는 전무했다. 그나마 바카라. 그리고 바카라. 그리고 아마도 바카라. 바카라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읽는 일밖에 없으니, 바카라만 한두 권 챙겼다. 그리고 걸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카페로. 몸을 차갑게 하지 말라는 말을 금언처럼 여기던 때였으므로 따뜻한 것을, 쓴 것을 마시고 싶지는 않으니, 카페라테를 마셨다.





순종적이고 강박적인 성격이 도움 될 때도 있다. 의사도 선생(?)이었고, 그의 처방은 내게 숙제였으므로 나는 착한 학생이 되어 매일 성실했다. 맑은 날은 당연했고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갔다. 낮이니 해가 있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혼자만의 동굴의 문을 열고, 문을 닫고. 동굴을 등지고 빛과 볕을 향해 매일매일.





어느 카페는 카페라테가 맛있고, 어느 카페는 의자가 편하고, 어느 카페는 의자만 편하고, 어느 카페는 창이 커 밝고, 어느 카페 카페라테에서는 탄 맛이 나고, 어느 카페 카페라테는 입천장을 다 녹일 기세고, 어느 카페 카페라테는 마지막 모금까지 향기롭고, 어느 카페는 주인보다 직원이 카페라테를 더 잘 말고(?), 어느 카페는 카페라테 맛보다 주인과 직원이 더 엉망... 아니, 나와 맞지 않고, 어느 카페는 곧 없어질 것 같고, (정말 없어지기도 했고), 어느 카페는 영원했으면 좋겠고, 나는 부담스럽지 않은 산미가 도는, 향기로운 카페라테를 좋아하고.





거의 빠짐없이, 네 해 반을 매일 나가고 걷고 마시고 또 걸었다. 좋아하는 카페와 카페라테가 생겼다. 긴 시간과 공을 들여 거둔 아름다운 결실. 이런 여정(?)의 종착지에 있는 몇몇 카페와 카페라테. 그들에 대한 내 애정이 클 수밖에 없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찾아낸 보석을 하루 한 부분에 꼭꼭 붙인다. 여기 좋다고, 이 커피 맛있다고 (내 것도 아닌데) 자랑하면서, 뿌듯해하면서. 애정하는 곳이 오래오래 있기를, 내가 그곳에 오래오래 있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를 스쳐 간 모든 따뜻한 카페라테에게, 그것을 정성껏 내어준 이에게 고맙다. 덕분에 무채색을 벗고 햇볕 아래서 다채로워졌다. 앞으로 나에게 올 따뜻한 카페라테들을 마중 나가듯 환영해야지. 정수리가 뜨거운데도, 좋아하는 것을 향해 걸어야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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