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유물을 가져온 신입사원
"유물을 가져왔네. 아빠가 쓰던 거 가져온 거야?"
사무실 한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신입사원은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검은색 플립폰이었다. 짧은 안테나가 달린 데다 액정도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요. 제 건데요."
"진짜? 이걸 쓰고 다닌다고?"
"네."
"한번 봐도 돼?"
신입사원은 잠시 망설이다 휴대전화를 건넸다.
직원은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옆에 있던 동료를 불렀다.
"야, 이것 좀 봐."
"뭔데?"
"휴대폰이래."
"진짜? 장난감 아니고?"
"아닙니다. 진짜 휴대폰입니다."
신입사원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직원이 휴대전화를 열었다. 작은 액정에 불이 들어오자 신기한 듯 웃었다.
"이런 건 어디서 구했어?"
"얼마 전에 대리점에서 샀습니다."
"대리점에서?"
"네."
직원은 동료와 얼굴을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너 혹시 우리 놀리는 거 아니지?"
신입사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장난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진지하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사무실 입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만 놀리고 돌려줘요. 첫날부터 너무하는 거 아니야?"
직원이 웃으며 휴대전화를 건넸다.
신입사원은 얼른 받아 가방에 넣었다.
나는 퇴직까지 일주일이 남았다.
27년을 다닌 회사였다.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인수인계도 거의 마쳤다. 바카라상 옆에는 집으로 가져갈 물건을 담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몇 가지 서류를 정리하고 후임자에게 업무를 넘기는 정도였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뜻밖의 일이 생겼다.
신입사원 교육이었다.
"팀장님, 이번에 새로 온 직원입니다. 오늘 하루만 부탁드려요."
총무 담당 직원의 부탁이었다.
"내가 며칠 안 남았는데?"
"그래도 팀장님한테 배우는 게 낫죠. 경험이 다르시잖아요."
부탁할 때는 누구나 말을 참 예쁘게 한다.
"알았어요. 오늘은 내가 데리고 다닐게요."
신입사원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허리가 거의 직각으로 꺾였다.
넥타이는 턱밑까지 바짝 조였고, 양손은 바지 옆선에 붙어 있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만큼은 우렁찼다.
"이름이 뭐죠?"
"한정우입니다."
"어? 나랑 이름이 같네."
녀석은 내 명찰을 확인했다.
"……."
"이거 참 우연이네."
나는 웃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거기 앉아요."
녀석은 또 한 번 허리를 숙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인사는 이제 그만해도 돼요."
그제야 녀석의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 풀렸다.
신입사원이 총무 담당 직원과 인사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나는 교육 자료를 준비했다.
잠시 후 총무 담당 직원이 서류를 확인하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우 씨, 이 번호 맞아요?"
"네."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는 없어요?"
"없는데요."
"그럼 연락 가능한 다른 번호는요?"
"이 번호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담당 직원은 더 묻지 않고 서류를 챙겼다.
정우는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덮개를 열고 버튼을 몇 번 누르더니 창가로 걸어갔다.
"전화가 안 돼요?"
내가 묻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계속 안 터집니다."
안테나를 뽑아 올리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거 참 오랜만에 보네."
"이거 아십니까?"
"알죠. 나도 예전에 비슷한 거 썼으니까."
정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일단 교육부터 받고 나중에 확인해 봐요."
녀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덮었다.
나는 교육 자료를 출력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위잉.
프린터에서 종이가 빠르게 나오기 시작했다.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우와."
"왜 그래요?"
"프린터가 이렇게 조용하게 나와요?"
"네?"
"제가 쓰던 건 소리가 엄청 컸거든요. 드르륵드르륵 하면서 나왔는데."
"도트 프린터 말하는 거예요?"
"네! 그거요."
녀석은 반가운 듯 웃었다.
"그거 종이 걸리면 진짜 골치 아프잖아요."
"그렇죠. 예전에 나도 그것 때문에 고생 좀 했어요."
정우는 출력된 종이를 받아 들고 앞뒤를 살펴봤다.
"글씨도 깨끗하네요."
"레이저 프린 터니까요."
"아, 그렇군요."
녀석은 처음 보는 물건이라도 되는 듯 프린터를 한 번 더 바라봤다.
나는 그런 정우의 모습을 보며 신입사원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사무실 구석에는 커다란 도트 프린터가 놓여 있었다. 마감 시간이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매출 자료를 출력하곤 했다.
종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한참을 씨름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소리를 들을 일이 거의 없다.
"팀장님, 이거 전부 읽어야 합니까?"
정우가 두툼한 교육 자료를 들어 보였다.
"오늘 다 읽을 필요는 없어요. 중요한 것부터 알려줄게요."
녀석은 작은 수첩을 꺼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매장이 조금 한산해졌다.
나는 정우를 선배 직원에게 잠시 맡겼다.
"민재 씨, 재고 조회하는 방법 좀 알려줘요."
"네, 팀장님."
민재는 정우를 옆으로 불렀다.
"이리 와봐요. 어렵지 않아요."
민재가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몇 번 눌렀다.
정우가 목을 길게 빼고 들여다봤다.
"선배님, 그거 PDA예요?"
"PDA요?"
"네. 전자수첩처럼 생긴 거 있잖아요."
"아, 이거요? 제 스마트폰인데요."
"스마트폰이요?"
민재가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여기서 상품번호를 입력하면 재고가 나와요."
"컴퓨터 안 켜도요?"
"네. 여기서 다 돼요."
"와……."
정우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번 해봐요."
민재가 스마트폰을 건네자 정우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갖다 댔다.
"여기를 누르면 됩니까?"
"네. 살짝 터치하면 돼요."
정우는 화면을 꾹 눌렀다.
"그렇게 세게 안 눌러도 돼요."
"아, 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상품 재고가 나타났다.
"됐습니다!"
정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별거 아니죠?"
"네. 그런데 진짜 신기하네요."
민재가 웃었다.
"정우 씨, 이런 거 처음 써봐요?"
"네."
"휴대폰 바꿔야겠네."
정우는 민재의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물었다.
"이거 얼마 정도 합니까?"
민재가 가격을 알려주자 정우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비쌉니까?"
"비싼 것도 있고 싼 것도 있죠."
정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의 가방을 바라봤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예전에 사용했던 PDA가 떠올랐다.
손바닥만 한 전자수첩에 일정과 전화번호를 저장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그것만으로도 제법 신기한 물건이었다.
정우가 나를 돌아봤다.
"팀장님도 저런 거 쓰십니까?"
"그럼요."
"좋으시겠습니다."
"왜요?"
"저는 처음 봤거든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쓰다 보면 금방 익숙해져요."
점심을 먹고 돌아온 정우는 사무실 벽에 붙은 근무표 앞에 서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가까이 다가가 날짜가 적힌 부분을 확인했다.
2026년 10월.
녀석의 손가락이 그 자리에 멈췄다.
나는 바카라상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정우 씨, 뭐 해요?"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아, 아닙니다."
"근무표 보고 있었어요?"
"네."
"본인 근무 일정은 따로 알려줄 거예요."
"알겠습니다."
정우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수첩을 펼친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적었다가 지우고, 다시 적기를 반복했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첫 출근 날이니 이것저것 신경 쓰일 게 많을 것이다.
오후에는 매장 업무를 함께 봤다.
상품 위치와 재고 확인 방법을 설명하자 정우는 수첩을 들고 내 뒤를 따라다녔다.
"이 상품은 여기서 조회하면 돼요."
"네."
"행사 상품은 가격표를 꼭 확인하고요."
"네."
"여기까지 이해했어요?"
"네!"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그런데 정작 컴퓨터 앞에 앉혀놓자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잘 모르겠죠?"
정우가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요?"
"한 번에 못 알아들어서……."
나는 의자를 끌어다 옆에 앉았다.
"처음부터 다 알아듣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시 해봅시다."
상품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거 재고 찾아봐요."
정우는 마우스를 잡고 화면을 몇 번 클릭했다. 엉뚱한 창이 열리자 당황한 듯 나를 바라봤다.
"잘못 눌렀습니다."
"괜찮아요. 여기 눌러서 돌아가면 돼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재고 수량이 화면에 나타났다.
"찾았습니다!"
녀석은 환하게 웃었다.
"그렇죠. 해보니까 되잖아요."
정우는 곧바로 수첩을 펼쳐 조금 전 배운 내용을 적었다.
그러다 볼펜 끝으로 종이를 두 번 두드렸다.
탁, 탁.
나는 무심코 그 손을 바라봤다.
한때 나도 저런 버릇이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나오면 수첩을 두드리며 한참을 고민하곤 했다.
"팀장님, 이것도 한번 봐주십시오."
정우가 수첩을 내밀었다.
"어디 봐요."
나는 녀석 옆으로 다가갔다.
정우는 자신이 적어놓은 내용을 하나씩 확인받았다.
틀린 부분을 고쳐주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겠습니다."
"좋아요. 내일은 혼자 해봐요."
"네!"
녀석은 다시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정우는 하루 종일 사용했던 수첩과 볼펜을 가방에 넣고 있었다.
"첫날인데 힘들지 않았어요?"
"아닙니다. 괜찮았습니다."
"내일은 다른 선배가 알려줄 거예요."
"팀장님은 안 계십니까?"
"나도 있긴 한데, 퇴직할 날이 얼마 안 남아서요."
"퇴직이요?"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네. 27년 다녔으면 오래 다녔죠."
"27년이나 다니셨습니까?"
"벌써 그렇게 됐네요."
정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렇게 오래 다니면 회사 일은 전부 아시겠네요."
나는 웃었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요."
"팀장님도요?"
"그럼요. 일이라는 게 하다 보면 또 새로운 게 생기니까."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왜요? 실망했어요?"
"아! 아닙니다."
정우가 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냥 신기해서요."
녀석은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팀장님, 오늘 감사했습니다."
"그래요. 조심해서 들어가요."
"내일 뵙겠습니다!"
또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허리 좀 펴고 다녀요."
내 말에 정우가 멋쩍게 웃었다.
사무실 문이 닫혔다.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하고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바카라상에 쌓여 있던 인수인계 자료를 정리했다.
그때 총무 담당 직원이 서류철 하나를 가져왔다.
"팀장님, 오늘 신입사원 인사서류입니다. 확인 서명만 부탁드릴게요."
"알았어요. 놓고 가요."
직원이 나간 뒤 서류철을 펼쳤다.
맨 위에는 신입사원 인사기록카드가 있었다.
한정우.
이름을 보고 피식 웃었다.
내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괜히 신경이 쓰였던 녀석이었다.
생년월일은 2002년이었다.
나는 서명할 부분을 확인하고 볼펜을 들었다.
그때 바카라상 옆에 놓인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부터 정리하던 개인 물품들이었다.
오래된 명함과 수첩,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 낡은 단체사진 한 장이 보였다.
1999년 신입사원 교육을 마친 뒤 동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사진을 꺼내 들었다.
맨 뒷줄 왼쪽 끝.
몸에 맞지 않는 양복에 넥타이를 바짝 조이고 서 있는 청년이 있었다.
스물넷의 나였다.
"참 촌스럽게도 입었네."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그런데 사진을 내려놓으려던 손이 멈췄다.
다시 들여다봤다.
짙은 눈썹과 약간 처진 눈꼬리.
웃을 때 한쪽만 올라가는 입꼬리.
오늘 아침 내 앞에서 허리를 깊숙이 숙이던 신입사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사진을 가까이 가져갔다.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사진 속 청년이 정우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확대했다.
작은 사진이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을 알아보는 데는 충분했다.
같은 이름.
같은 나이.
그리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닮은 얼굴.
그러나 생년월일은 달랐다.
나는 1975년생이다.
정우는 2002년생이다.
27년의 차이.
한참을 사진과 인사기록카드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다 상자 안에 있던 낡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신입사원 시절 사용하던 수첩이었다.
검은색 표지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모서리도 많이 닳아 있었다.
첫 장을 펼치자 삐뚤빼뚤한 글씨가 보였다.
모르면 물어볼 것.
나는 피식 웃었다.
당시에는 이런 말까지 적어놓고 다녔나 싶었다.
그 아래에는 가족과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수첩을 넘기려던 손이 멈췄다.
첫 장 맨 위에 적힌 숫자 때문이었다.
내 휴대전화 번호.
016으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나는 정우의 인사기록카드를 끌어당겼다.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칸을 확인했다.
처음 세 자리가 같았다.
그다음 숫자도 같았다.
나는 수첩과 인사기록카드를 나란히 놓았다.
숫자를 하나씩 짚어 내려갔다.
마지막 자리까지.
틀린 숫자가 없었다.
나는 다시 처음부터 확인했다.
결과는 같았다.
등받이에 기대려다 말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수첩에 적힌 글씨는 분명 내 것이었다.
27년 전, 처음 휴대전화를 장만하고 직접 적어놓은 번호였다.
그런데 오늘 처음 출근한 신입사원이 같은 번호를 자신의 것이라고 적어놓았다.
나는 사진을 다시 들었다.
1999년의 나.
그리고 2026년의 신입사원.
생년월일도, 주소도 다른 두 사람.
그런데 얼굴과 이름뿐 아니라 휴대전화 번호까지 같았다.
복도에서 청소 도구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퇴근했을 시간이었다.
나는 볼펜을 들어 인사서류의 결재란에 서명하려 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이름을 적지 못했다.
1999년의 내 전화번호를, 2002년에 태어난 신입사원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