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유블리안은 정년까지 다닐 줄 알았다. 나의 온라인카지노북 첫 연재글도 [대기업에서 정년까지 살아남기]였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할 것 같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정년이라는 말이 아주 먼 이야기였다. 하루를 버티는 것도 벅찬 신입사원에게 몇십 년 뒤의 일은 남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시간이 내 앞까지 와 있었다.
스무 해를 훌쩍 넘겼고, 어느덧 서른 해를 바라보고 있다.
매장을 열고 닫았고, 수많은 고객을 만났다. 직원들과 웃기도 했고 다투기도 했다. 매출 목표 하나에 마음을 졸였고,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던 날도 있었다.
명절이면 남들이 쉬는 날 일했고, 주말이면 평일보다 더 바빴다. 오랫동안 유통업에서 일하다 보니 내 달력은 조금 달랐다.
남들이 쉬는 날이 바쁜 날이었고, 남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도 매장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온라인 게임생활이 그런 줄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 다닌 햇수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승진이나 평가, 매출 같은 것이 크게 보였다면 이제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오래 고민한 끝에 온라인 게임생활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정년까지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가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인생에는 끝까지 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어디에서 멈출지 결정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퇴직을 결정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서운했던 일보다 고마웠던 일이 먼저 떠오른다.
처음 일을 가르쳐주던 선배,
힘든 날 말없이 커피 한 잔 건네던 동료,
내가 실수했을 때 대신 앞에 서주던 사람,
별것 아닌 농담으로 지친 하루를 웃게 해 준 직원들.
그리고 퇴사를 앞둔 지금, 내 제2의 인생을 응원해 주는 분들.
물론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억울했던 날도 있었고, 진작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온라인 게임생활이 어떻게 좋은 기억으로만 채워질 수 있었겠는가.
지금 돌아보면 좋았던 기억도, 좋지 않았던 기억도 모두 내 온라인 게임생활이었다.
회사에서 꽤 많은 것을 배웠다.
일하는 법을 배웠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오래 남는지도 알게 됐고, 숫자보다 사람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버티는 법을 배웠다.
다만 이제는 버티는 것 말고 다른 것도 배워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조금 더 쓰고, 바카라을 만들고, 그동안 회사라는 이름 뒤에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고 싶다.
퇴직한다고 해서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도 나는 똑같은 나일 테고, 습관처럼 출근 시간을 확인할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반복한 삶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한 가지는 달라진다.
내일 어디로 갈지를 회사가 아니라 내가 결정한다는 것.
슬롯생활을 시작한 뒤 그런 아침을 맞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
아직은 나도 조금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 묘한 기대도 있다.
스무 해를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나는 회사 안에서 꽤 열심히 살았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도망치지 않았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
그러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퇴근하듯 인사를 하고 싶다.
고생했다.
그리고 너무 고마웠다.
회사에서의 마지막 퇴근이 인생의 퇴근은 아니니까.
이제 나는 다른 곳으로 출근해보려 한다.
어쩌면 처음으로,
회사가 정해준 곳이 아니라 내가 정한 곳으로.
24살의 나는 앞만 보고 회사로 출근했다.
51살의 나는 이제 다른 길을 바라본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이번에는 내가 정한 길이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회사생활을 뒤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