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신병〉을 보고
어제 드라마 〈신병4:사보타주〉를 보았다.
스무 살을 갓 넘겨 입대한 이등병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하루를 버텼다. 실수하면 혼이 났고, 서러워도 누구에게 쉽게 말하지 못한 채 숨어서 울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 군대라는 낯선 공간에 처음 들어섰던 청춘들이 떠올랐다.
그들 앞에는 이등병 시절을 먼저 지나온 선임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능숙했던 사람은 없었을 텐데, 계급이 올라가면서 어느새 후임을 가르치고 바카라임지는 자리에 서 있었다.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은 부대에서 보낸 시간을 정리하며 슬롯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중대장은 서로 다른 병사들을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품으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군대가 슬롯로 나가기 전에 거치는 예행연습처럼 느껴졌다.
이등병은 아무것도 모르는 슬롯 초년생을 닮았다. 선임의 눈치를 살피고, 낯선 규칙을 익히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준다. 시간이 지나면 후임이 들어오고 어느새 누군가에게 일을 알려주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계급이 올랐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위에는 여전히 선임이 있고, 아래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후임이 있다.
군대에는 계급장이라도 있지만 슬롯의 계급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가 선임이고 누가 후임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도 많다. 한 곳에서는 경험 많은 선배로 대접받다가도, 다른 곳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된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일이 생기고, 이제는 알 것 같다고 여길 때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군 복무를 할 때는 제대만 하면 모든 것이 내 세상이 될 줄 알았다. 더는 통제받지 않아도 되고,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슬롯에 나온 뒤의 하루는 또 다른 입대의 연속이었다.
온라인 게임에 들어가면 신입사원이 되었고, 새로운 일을 맡으면 다시 초보자가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에도 정답은 없었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일이 오늘은 낯설어지고, 오래 쌓은 경험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앞에서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제대는 했지만 삶에서는 몇 번이고 다시 신병으로 돌아갔다.
지금 슬롯에서 나의 계급은 상병 정도가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등병은 벗어났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대를 기다릴 만큼 여유로운 말년 병장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경험을 나누어야 하는 선배이면서,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배워야 할 후배다. 일을 모른다고 물러설 수도 없고, 안다고 자신하기에도 부족하다.
청년도 아니고 노년도 아닌 중년의 자리가 그렇다.
지나온 날보다 남은 날을 헤아리게 되지만, 그렇다고 삶의 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들면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쉰 살쯤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단단해지고, 웬만한 일에는 태연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고 삶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알아야 할 것은 많아지고,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바카라임도 늘었다. 젊은 날에는 내 한 몸만 잘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중년에는 나의 선택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오래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견딘다.
상병은 군 생활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아직 갈 길이 남은 계급이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일을 겪었고 나름대로 세상을 배웠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늘도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익숙한 옷을 입고 익숙한 길을 걷지만, 오늘이라는 날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새로운 하루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아침 조금씩 신병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노래 한 구절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산다는 건 알 것 같아도
읽을 수 없는 글 같은 것.
알 것 같으면서도 끝내 다 알 수 없는 삶.
50대의 하루가 이렇게 또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