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 류 씨 족보를 보다가 알게 된 항렬 이야기
회사에서 처음 만난 거래처 대표님과 얘기하다가 같은 풍산 류 씨라는 걸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항렬 이야기도 나왔다.
알고 보니 대표님은 나보다 한 항렬 아래였다.
처음 만난 거래처 CEO가 족보상으로는 조카뻘이었던 셈이다.
둘 다 웃었고, 처음 만난 자리의 어색함도 많이 풀렸다. 덕분에 거래도 기분 좋게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풍산 류 씨다.
서애 류성룡의 13대손이고 생물 파다.
생물 파는 류성룡의 둘째 아들 도암공 류단에서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13대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풍산 류 씨 전체로는 몇 세인지, 내 항렬이 뭔지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풍산 류 씨 항렬표를 찾아보니 류성룡은 13세이고, 나는 26세에 해당했다.
26세 항렬자는 시(時), 수(壽), 재(在)다.
유명인들 이름을 보면 항렬이 좀 더 쉽게 보인다.
권투선수 유명우는 ‘우(佑)’자를 쓰는 25세 항렬이다. 나보다 한 항렬 위다.
유시민 작가와 배우 류시원은 ‘시(時)’자를 쓰는 26세로, 나와 같은 항렬이다. 나이로 보면 당연히 형님들이다.
가수 유재하와 유영하 의원은 ‘하(夏)’자를 쓰는 27세로, 나보다 한 항렬 아래다.
만약 유영하 의원을 만나게 된다면 족보상으로는 내가 아재뻘이 된다.
물론 유시민 작가에게 형님이라고 부를 일도, 유영하 의원에게 아재 소리를 들을 일도 없겠지만.
유시민은 ‘유’인데 류시원은 왜 ‘류’일까?
둘 다 한자로는 柳다.
두음법칙을 적용해서 ‘유’라고 쓰는 경우가 있고, 본래 음인 ‘류’를 쓰는 경우도 있다. 한글 표기는 다르지만 같은 柳 씨다.
풍산 류 씨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안동 하회마을도 나온다.
하회마을은 고려 말에 풍산 류 씨가 자리 잡은 씨족 마을이다. 류종혜가 정착한 뒤 류중영과 그의 두 아들 류운룡, 류성룡 대에 크게 번성했다.
류운룡과 류성룡 형제는 선대의 계보와 기록을 정리했고, 이후 자손들이 계속 보완해 나갔다. 하회 충효당에는 풍산 류 씨의 오래된 족보초도 전해지고 있다.
옛사람들이 항렬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후손이 많아지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다 보면 같은 집안사람끼리도 처음 만나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나이만 봐서는 서로 몇 대손인지 알기 어렵다. 어느 집안은 자손이 일찍 태어나고, 어느 집안은 늦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조상을 기준으로 세대를 나누고, 같은 세대 사람들의 이름에 공통된 글자를 넣었다.
그 글자가 항렬자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돌림자다.
이름을 보면 같은 집안에서 어느 세대에 속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전에는 처음 만난 종친에게 “무슨 자 돌림이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지금은 항렬자를 쓰지 않는 집도 많고, 자기 항렬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항렬을 알면 나이와 족보상의 세대가 왜 다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랫세대일 수도 있고, 어린 사람이 윗세대일 수도 있다.
세대 차이가 더 벌어지면 할아버지 나이인 사람이 손자뻘이 되고, 손자 나이인 사람이 할아버지뻘이 되는 일도 가능하다.
처음 만난 거래처 대표님이 내 조카뻘이 된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