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숨 쉴 공간을 내어주는 관계
국민학교 시절, 2인용 나무 바카라상 한가운데에는 종종 하얀 선이 생겼다.
짝꿍은 분필을 꾹 눌러 바카라상을 반으로 나누고는 조금이라도 내 연필이나 팔꿈치가 선을 넘어가면 눈을 흘겼다. 시험을 보는 날이면 바카라가방을 바카라상 한가운데 세워 서로의 답안지를 가렸다. 작은 바카라상 위에 만리장성 하나가 세워진 셈이었다.
나는 그 선이 서운했다.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짝꿍에게 물었다.
“내가 그렇게 싫어? 그럼 선생님한테 짝 바꿔달라고 해.”
짝꿍은 바카라가방 너머로 나를 한동안 바라보다 말했다.
“네가 싫은 게 아니야. 그냥 내 자리가 있어야 편해. 그래야 안 싸우잖아.”
그때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친한 사이라면 연필 하나쯤 넘어가도 괜찮고, 팔꿈치가 조금 부딪쳐도 웃어넘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바카라상 위의 분필 선과 같은 것이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자리가 있다.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시간,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은 사정, 다른 사람의 판단을 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선을 긋는다고 해서 상대가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잘 지내기 위해 필요한 거리일 때가 많다.
다정이라는 이름의 침범
어른들의 관계에는 분필로 그은 선이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상대의 경계를 쉽게 잊는다.
선을 넘어오는 사람들은 대개 다정한 말을 앞세운다.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그런 걸 숨겨.”
“걱정되니까 그러는 거지.”
말만 들으면 틀린 것이 없다. 하지만 걱정이라는 이유로 상대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계속 묻거나, 친하다는 이유로 대답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다정함과는 조금 다른 일이 된다.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고, 상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평가하고, 친밀함을 이유로 마음 안쪽까지 들어오려는 순간 관계는 편안함을 잃는다.
무례는 때때로 ‘정이 많아서’라는 말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그 정을 받아내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따뜻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진정한 친밀함은 상대의 모든 것을 알아야 성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말하지 않을 자유를 인정하고, 대답하지 않는 침묵까지도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바람이 통하는 거리
경계를 분명히 하는 사람을 두고 차갑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왜 그렇게 벽을 치고 살아?”
“사람이 너무 선을 긋는 것 아니야?”
나도 한동안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너무 각박한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곤 했다. 누군가 불편한 질문을 해도 웃으며 넘겼고,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건네받아도 괜찮은 척했다. 참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운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너무 가까이 서면 상대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작은 움직임에도 어깨가 부딪치고, 처음에는 사소했던 불편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운함이 되기도 한다.
숲의 나무들은 서로 붙어서 자라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 사이로 햇살과 바람이 지나갈 틈을 남긴다. 그 거리가 있기에 나무는 나무대로 자라고, 숲은 숲의 모습을 유지한다.
사람 사이에도 그런 바람길이 필요하다.
가까이 있어도 숨이 막히지 않는 거리. 서로의 삶을 궁금해하면서도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 거리. 도움이 필요할 때는 손을 내밀지만 상대가 잡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는 거리.
그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우리는 서로를 온전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다.
선을 지킨다는 것
이제는 누군가 내 선을 넘어올 때 무조건 웃으며 받아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높고 단단한 벽을 세우거나 거칠게 밀어낼 필요도 없다. 어린 시절의 짝꿍이 그랬던 것처럼 담담하게 말하면 된다.
“네가 싫은 게 아니야. 다만 나에게도 내 자리가 필요해.”
상대가 서운해할까 봐 내 마음을 계속 뒤로 미루다 보면, 어느 순간 관계 자체가 버거워진다. 경계를 말하는 것은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더 크게 상처받기 전에 서로의 자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좋은 관계는 모든 것을 나누는 관계가 아니라, 나누지 않는 부분까지 존중할 수 있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타인의 선 앞에서는 한 걸음 멈추고, 나의 선은 조용히 지켜내고 싶다.
우리 사이로 적당한 바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