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말

가스라이팅인가, 그의 잘못인가

by유블리안

회사 채팅방에 한 사람이 업무와 관련된 질문을 올린 적이 있다. 누군가를 비난한 것도 아니었고, 감정이 섞인 글도 아니었다.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확인이 필요한 내용을 물었을 뿐이었다.


나도 같은 채팅방에 있었다.

그런데 질문에 대한 답보다 먼저 돌아온 것은 긴 침묵이었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글을 삭제하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나는 화면을 들여다보다 잠시 손을 멈췄다.

무엇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질문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면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지우라고만 했다.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말만 남았다.

그 순간부터 질문의 내용은 사라지고, 질문을 올린 사람이 문제가 되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험담이 이루어졌다.


“그건 왜 올린 거야?”

“남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어?”

“이유 없이 사람들이 그러겠어?”


처음에는 분명 단순한 업무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방에 간단하게 답을 남겼다. 그러다가 불똥이 나에게로 튀었다. 왜 대답해 주냐고.


비슷한 일이 그전에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의 실수를 큰소리로 지적했다. 같은 내용도 조용히 말할 수 있었지만, 굳이 주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변 사람이 없으면 태도가 달라졌다.

괜찮으냐고 묻고, 자신은 그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다 사람들이 다시 모이면 목소리는 또 커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를 챙겨주는 사람인지, 그를 이용해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사람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그 사람도 사건보다 자신을 먼저 의심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정말 일을 못하나.’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들도 나를 불편해한다면 내게 문제가 있는 건가.’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은 거창하게 들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훨씬 평범한 말로 시작된다.

“괜히 싫어하겠어, 이유가 있겠지.”

“여러 사람이 똑같이 말하잖아.”

“너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말들은 모두 그럴듯하다.

실제로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고치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봄과 떠넘김은 다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기도 전에 모든 이유를 한 사람의 성격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성찰을 권하는 말이 아니라 입을 막는 말이 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싫어하면 그 사람에게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조직에서는 영향력이 있는 한 사람의 평가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까지 바꾸기도 한다.

누군가가 먼저 “저 사람은 문제가 있어”라고 말하면, 이후의 행동은 모두 그 평가를 통해 해석된다.


조용히 있으면 소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견을 말하면 고집이 세다고 한다.

억울함을 설명하면 변명이 많다고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한번 문제 있는 사람으로 정해지고 나면 어느 쪽을 선택해도 빠져나오기 어렵다.

더 답답한 것은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말이었다.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이 한마디로 모욕적인 말과 공개적인 질바카라, 업무 배제의 바카라임은 흐려졌다.


사람을 싫어할 수는 있다.

모든 사람이 서로 잘 맞을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불편한 사람이 있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싫어하는 감정이 상대를 공개적으로 망신 줄 권리까지 주지는 않는다.


업무에서 소외시키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조롱하거나, 질문조차 하지 못하게 할 이유도 되지 않는다.


감정에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행동에는 바카라임이 따른다.

누군가를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는 한동안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행동부터 고치려 했다. 말을 줄이고, 질문을 삼키고, 채팅방에 글을 올리기 전에도 몇 번씩 문장을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조심하면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가 작아질수록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더 쉽게 물러나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과 부당한 일을 참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자신을 돌아보는 것과 자신을 의심하는 것도 다르다는 사실을.


누군가 힘든 일을 꺼냈을 때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네가 뭘 잘못했어?”가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어?”

“상대가 어떤 말을 했어?”

“그 일이 계속 반복됐어?”


사실을 들은 뒤에도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사람들이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기회조차 잃는다.


그 사람이 나에게 퇴사해야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숨 막혀 죽을 것 같다고. 그래서 나는 한마디 조언을 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 분위기 조성하는 사람도 따르는 사람도 각자 이유가 있을 테니 신경 쓰지 말아라."


하지만 그 조언에도 불구하고 며칠 뒤 출근길에 쓰러져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일을 떠올린다.

그에게도 돌아볼 부분이 있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사람이 선택한 무례한 행동까지 그의 바카라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없다고 그 행동이 멈추지 않는다.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서 그런 행동을 계속하며 그 행동이 자기 권력이라 생각한다. 나한테 밉보이면 너도 이렇게 된다고.


하지만 권력은 오래가지 않고 직원들은 계속 바뀐다. 언젠가는 더 강한 사람이 나올 것이고 똑같이 되돌려 받을 것이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에는 정말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이유가 오해일 수도 있고, 질투일 수도 있으며, 그저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미움의 이유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다.

그 미움을 핑계로 한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했느냐이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은 마음속에서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바카라임은 미움받은 사람이 아니라, 행동한 사람이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