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표에는 사람의 마음이 적혀 있다
어느 여름날, 폭염 예보가 뜨던 날이었다.
뉴스에서 "올여름 역대급 더위"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온라인 쇼핑몰에서 선풍기를 검색했다. 며칠 전만 해도 2만 원대였던 제품이 3만 원대로 올라 있었다. 에어컨은 아예 인기 제품이 품절이었다. 날씨가 바뀐 것뿐인데, 가격표가 바뀌어 있었다.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다. 여름에는 가만히 있어도 불티나게 팔리지만 겨울에는 묶음 판매 할인을 해도 소비가 되지 않는다. 명절 때 달걀 값이 폭등하고, 그나마 비싸게라도 사고 싶어도 품절 대란이 일어난다.
가격표는 가만히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숫자 뒤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걸 수요와 공급이라고 부른다. 말은 딱딱하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은 오른다. 물건은 많은데 찾는 사람이 줄면 가격은 내려간다.
폭염 예보 하나가 선풍기를 찾는 사람을 한꺼번에 늘렸다. 공장은 갑자기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 물건은 그대로인데 사려는 사람만 몰렸으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숙박 예약 앱을 보면 이 원리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같은 방이다. 같은 침대, 같은 뷰, 같은 조식. 그런데 평일과 주말 가격이 다르다. 여름 성수기엔 두 배가 넘기도 한다.
숙소가 달라진 게 아니다. 가고 싶은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주말엔 쉬고 싶은 사람이 몰린다. 여름엔 휴가를 떠나려는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인다. 반면 평일 비수기엔 방이 비어도 손님이 오지 않는다. 숙소 입장에서는 평일엔 가격을 낮춰서라도 방을 채우는 게 낫다.
같은 방인데 가격이 다른 건 불공평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타이밍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고, 판매자는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고 싶다. 서로 다른 마음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면 거래가 이루어진다. 경제학에서는 이걸 균형점이라고 부른다. 협상이 성사되는 순간이다.
물론 시장이 언제나 공정한 건 아니다. 폭염 때 선풍기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리는 건 편승인지 폭리인지 경계가 흐릿하다. 성수기 숙박비가 적정한지 아닌지도 사람마다 느끼는 온도가 다르다.
다만 분명한 건, 우리의 선택도 시장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가격엔 못 가겠다"며 숙박 앱을 닫는 사람이 늘어나면, 숙소는 결국 가격을 내린다. 반대로 휴가 막바지 주말처럼 "지금 아니면 없다" 싶은 타이밍엔 비싸도 예약이 찬다.
이월상품 코너는 그 반대쪽에 있다. 지난 시즌 옷들이 반값, 혹은 그 이하로 걸려 있다. 팔리지 않은 재고가 쌓이면 판매자는 결국 가격을 낮춘다. 찾는 사람이 없으면 가격도 버티지 못한다. 같은 옷인데 시즌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가격이 달라지는 것, 불합리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솔직한 시장의 언어다.
한 사람의 선택은 작아 보이지만 그게 모이면 수요가 된다. 수요가 움직이면 공급이 따라온다. 가격이 바뀐다.
결국 가격표에는 물건의 값만 적혀 있는 게 아니다.
그걸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 불안, 기대가 함께 적혀 있다.
폭염 예보에 선풍기를 검색하다 가격을 보고 멈칫하는 그 순간에도, 성수기 숙박비를 보고 "그냥 집에 있을까" 하고 앱을 닫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경제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