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는 둘인데, 입은 하나인 이유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눈은 두 개다. 귀도 두 개다. 그런데 입은 하나다.
어릴 때는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눈이 하나면 이상하고, 귀가 하나면 불편하고, 입이 두 개면 왠지 무서울 것 같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 당연한 얼굴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마치 몸이 오래전부터 조용히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받아들여라. 하지만 말은 조심해서 해라.
눈이 두 개인 건 앞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한쪽만 보지 말라는 뜻처럼도 느껴진다. 사람을 볼 때도 그렇다. 한 장면만 보고 판단하면 그 사람 전체를 놓치기 쉽다. 내가 본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오해는 생각보다 빠르게 자란다.
귀가 두 개인 것도 마찬가지다. 한쪽 말만 듣다 보면 마음이 금방 기울어진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내 편에 가까운 말만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생각도 한쪽으로 굳어진다. 반대편의 목소리도 들어보라는 뜻인지 모른다.
그런데 내뱉는 통로는 하나뿐이다.
받아들이는 구멍은 이렇게 많은데, 내보내는 구멍은 딱 하나다. 이 사실이 참 묘하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말한다. 들은 것을 바로 말하고, 본 것을 바로 판단하고, 느낀 것을 곧장 내뱉는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내 것이면서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상대의 귀에 닿고, 상대의 마음에 남는다. 나는 그냥 한 말인데 상대에게는 오래 남는 말이 있고, 나는 웃으며 한 말인데 상대는 상처로 받아들이는 말이 있다. 나는 별뜻 없었다고 해도, 상대는 그 말의 온도까지 기억한다.
그래서 입이 하나인 것인지도 모른다. 많이 보고 많이 듣되, 말은 한 번 더 생각하고 내보내라고.
대화에는 두 사람의 바카라임이 함께 있다. 듣는 사람은 서둘러 오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필요하고, 말하는 사람은 함부로 찌르지 않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만 바라기 전에, 내가 어떤 얼굴과 말투로 다가가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사람은 자기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다. 거울을 보지 않는 한, 내가 어떤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말투와 상대가 듣는 나의 말투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관계는 나를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얼굴을 상대가 보고, 내가 놓친 나의 말투를 상대가 느낀다. 관계가 불편하면서도 필요한 이유가 거기 있다.
인체의 비밀은 결국 관계의 비밀이었다. 몸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답게 산다는 건 많이 말하는 일이 아니라,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신중하게 말하는 일이라는 것을.
눈이 둘인만큼 넓게 보고, 귀가 둘인만큼 깊게 듣고, 입이 하나인만큼 천천히 말하는 것.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