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익명게시판의 상처가 오히려 약이 되다
4년도 더 된 일이다.
사내 익명 게시판에서 나를 향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점포에서 무슨 업무를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안 보였으면 좋겠다는 식의 글이었다. 뒤에 그 이유를 적긴 했지만 사실과 다른 일이었다.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읽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 문장이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보지 않으면 된다. 누르지 않으면 된다. 지나가면 된다. 남의 말 하나에 내 하루를 내어줄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반듯하게 접히지는 않았다.
휴대폰 화면은 꺼졌는데, 그 문장은 마음 안에서 쉽게 꺼지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웃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글은 이미 지나갔는데, 맞은 사람의 마음에는 한동안 남아 있었다.
더 씁쓸했던 것은 그다음이었다.
존재감이 없을 때는 아무도 나를 향해 돌을 던지지 않았다. 조용히 일하고, 조용히 지나가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일 때는 저격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씩 밖으로 드러나고, 누군가의 눈에 띄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말들이 따라붙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이 마치 사실처럼 적히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 말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거기에 맞장구를 치듯 조롱 댓글을 남겼다. 이름은 가려져 있었지만, 말의 방향은 분명했다. 익명이라는 벽 뒤에서 한 사람의 모습은 쉽게 바뀌고 있었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인사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는 옆에서 일하는 동료를 헐뜯고 조롱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하루를 버티고, 같은 일을 나누고, 때로는 서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그때 나는 글이 무서운 이유를 다시 생각했다.
글은 사실을 담을 수도 있지만, 사실처럼 보이는 감정을 담을 수도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늘 사실을 확인하고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먼저 던진 말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동조하기 시작하면, 그 말은 어느 순간 진실의 옷을 입은 소문이 된다. 그리고 그 소문 안에서 한 사람은 설명할 기회도 없이 작아진다.
해명할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런 생각 안 하는데 혼자 찔려서 그러냐? 네가 맞는가 보네." 이렇게 한 사람을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든다. 해명 자체가 실수가 되는 구조다.
사람은 때로 미워서만 공격하지 않는다. 불편해서 공격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자기 자리 밖으로 한 걸음 나오는 모습을 견디지 못해서, 이름 없는 말로 다시 끌어내리려 하기도 한다.
물론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어떤 순간에는 부족한 모습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의 존재를 익명 뒤에 세워놓고 함부로 겨냥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글은 손가락 하나로 쓸 수 있다. 하지만 한 줄을 쓰기 위해 수십 번을 생각하고 수정을 한다.
익명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쓴 한 줄도, 받는 사람에게는 익명이 아니다. 쓰는 사람에게는 가벼운 푸념일 수 있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오래 남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문장은 생각보다 멀리 간다. 그리고 때로는 생각보다 깊이 박힌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품격이 문장력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려한 문장을 쓰는 사람은 많다.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사람을 함부로 쓰지 않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누군가의 약점을 소재처럼 소비하지 않고, 분노를 표현하더라도 조롱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며, 비판을 하더라도 사람 하나를 완전히 무너뜨리려 하지 않는 태도.
나는 그 조심스러움 안에 글의 품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글은 반드시 착한 말만 하는 글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하고, 때로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써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사람을 말할 때 그 사람의 전부를 함부로 규정하지 않는 것. 화가 나도 인격을 짓밟지 않는 것. 누군가를 향한 문장이 결국 한 사람의 하루를 지나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문장 앞에서 한 번은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이 말을 쓰면 누군가가 무너질까. 이 표현은 필요한 비판일까, 아니면 감정의 배설일까. 나는 지금 사람을 말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사람을 이용하고 있는 걸까.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는 사람이 좋은 작가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상처를 받으면 억울하다. 속상하고, 화도 난다. 때로는 똑같이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 앞에서 조금은 더 오래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은 상처를 또 다른 상처로 되돌려주지 않는 것. 그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지키고 싶다. 누군가를 낮추는 글보다 누군가를 세워주는 글을 쓰고 싶다. 사람을 해치는 문장보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문장에 가까워지고 싶다.
글은 결국 사람을 향해 간다.
그러니 작가의 품격은 종이 위의 문장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어떻게 부르는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어디까지 밀어붙이는지, 내 감정을 글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는지. 그 모든 태도가 쌓여 한 사람의 문장이 된다.
나는 아직 좋은 작가가 아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잊지 않으려 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보다, 사람을 함부로 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내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적어도 그 문장이 사람을 해치는 쪽이 아니라 사람을 이롭게 하는 쪽에 서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글의 품격이고, 작가라는 이름 앞에서 오래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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