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난 환승역>의 출간을 축하하며
내 별명은 어려서부터 ‘빵순이’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 나도 빵집 앞에서는 발길을 멈추게 된다. 향수병이 도진 듯 구수한 냄새에 끌려 들어간 빵집에서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나를 길러준 할머니는 술빵을 자주 만들었다. 매미가 울고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는 여름날 아침, 가마솥 안에서 빵이 익어갔다. 하얀 가루 하나로 멋진 간식을 눈앞에 내놓는 할머니가 요술쟁이로 보였다. 막걸리로 빚어서 ‘술빵’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시큼한 맛이 나면서도 숭숭 구멍이 뚫려 더 말랑거리던 빵.
마실 가는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은 내 걸음은 밭둑 위에서 총총거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술빵을 받아든 이웃 아주머니는, 앙증맞고 예쁜 과자를 내놓았다. 술빵만 먹어봤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였다. 입에 넣으면 씹기도 전에 달콤함이 목구멍 너머로 쏙 넘어갔다. 서울의 큰 회사에 다니는 아들이 가져왔다며 자랑삼아 내놓은 건 아마 ‘화과자’였던 것 같다.
넓은 접시를 가득 덮은 술빵과 작은 접시에 쏙 들어앉은 예쁜 화과자. 자주 먹는 술빵보다 그 과자가 더 맛있게 보였다. 할머니를 따라 옆집에 놀러 갈 때마다 내 머릿속은 은근히 예쁘고 맛있는 화과자를 떠올리며 설레곤 했다. 어린 눈에 비친 화과자는 감히 넘보지 못할, 저 먼 서울처럼 화려하고 달콤한 세상의 맛이었다.
이후 엄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는 ‘식빵’을 처음 알게 되었다. 화과자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똑같은 두께의 네모난 빵이 기다란 봉지에 차곡차곡 담겨 있는 게 신기했다. 친구는 버터를 발라 설탕 가루를 솔솔 뿌리고, 그 위에 다른 빵 하나를 겹쳐 나에게 내밀었다.
"이건 식빵이라고 하는 거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살살 녹아들던 그 느낌이 아직도 입안에 남아도는 듯하다.
부끄럽지만 중학교 때 이야기도 한 자락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공부 잘하고 얼굴도 예쁜데 점심으로 빵을 밥 먹듯 싸 오는 짝꿍이 늘 부러웠다. 우리 집은 밥 이외의 것들은 모두 사치품이라 여길 정도로 가난했다. 교육받을 아이들이 다섯이나 됐으니 부모님이 생각하는 최고의 미덕은 절약이었을 테다. 바카라상 위에 놓인 짝꿍의 빵 앞에서 내 도시락은 기가 죽을 수밖에. 이런 낌새를 알아채고는 내 밥과 자신의 빵을 반씩 나눠 먹자는 제안을 해왔다. 무장아찌와 멸치가 뒤섞인 밥과 마요네즈를 품은 파릇한 채소는 비주얼부터가 달랐다.그 후로도 짝꿍은 툭하면 빵을 잘라 내밀고는 내 도시락을 끌어당겨 먹어주곤 했다.
슬롯생활을 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지독한 빵 애호가가 되었다. 집 안에 빵을 쌓아두어야 안심했고 선물로도 빵을 먼저 떠올렸다. 어릴 적 동경했던 화과자처럼 화려한 것과는 달리, 내 태생이 촌스러워서인지 그저 밋밋하고 퉁퉁한 식빵류를 좋아한다. 가끔 멋을 낸다면 나만의 레시피로 샌드위치를 즐기는 게 고작일 뿐.
돌아보면 나는 참 틀에 박혀 살아온 사람이다. 먹는 것도, 생각의 범주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학교와 집이라는 작은 우물에서 개구리처럼 소박하게 살면서도 글쓰기는 즐겼다.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건 경희대 국문과 서정범 교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버리지 않는 이상, 글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 영원한 친구다.”
뻔한 일상을 닮았는지 내 글은 반짝이는 맛도 없고 그저 밍밍할 뿐 발전이 보이지 않았다. 쓰기에 심드렁해질 무렵, 새로운 ‘빵’을 만나게 된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빵 이름이 얼마나 신선하고 고소한 느낌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지금껏 숱한 빵을 접해왔지만 ‘글빵’이라는 획기적인 이름은 처음 들어봤으니까.
‘<미야의 온라인카지노 글빵연구소>를 개업하며’라는 제목에 이끌렸을 때는 이미 개업식이 끝난 뒤였다. 아쉬운 마음에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작은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글쓰기 새내기 1학년들, 여기 모여요. 언니가 글빵 굽는 법 알려줄게요.’
글을 굽는 법을 알려준다니, 참 재미있는 표현이었다. 나는 '글쓰기 새내기 1학년' 모이라는 데에서 멈칫했다. 나는 과연 몇 학년일까. 비록 빛나는 글은 못 써도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해왔으니 1학년은 어울리지 않았다. 포기하고 창을 닫으려는 순간, ‘연구소’라는 그럴듯한 낱말이 내 발목을 잡았다. 연구소라니, 어쩌면 내 특징 없는 글을 멋지게 성형해 줄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덜컥 문을 두드렸다.
쭈뼛거리는 지각 수강생임에도 미야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나를 환영해 주었다. 수강생 모두의 글을 정성스럽게 첨삭을 달아주며 맛있는 글로 구워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숙제만 성실히 해도 작가로서 어깨를 펼 수 있도록 이끌어줄 선생으로 보였다. 투박한 식빵처럼 보이던 글도 매일 수정하고 다듬다 보면 화과자처럼 시선을 끌기도 하고, 달콤한 맛을 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라인카지노의 한 변방에서 이름 없이 글을 끄적이고 있던 내게 ‘글빵연구소 수강생’이라는 타이틀은 내 삶의 ‘환승’이었다. 글쓰기에 새로운 재미가 붙으면서 낯선 문우들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교류를 해봐도 좋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나를 지배하고 있던 편협한 생각을 깨뜨려주는 계기로 자리매김해준 것 같다.
글빵연구소에서 또 하나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수강생 중 한 분인 ‘잇고’ 작가님이 출판사를 차리면서, 우리 수강생 스물여섯 명의 글을 한 권의 바카라으로 출판하자는 거였다. 새로운 길 앞에서 멈칫하는 습관이 있는 내게도 어서 ‘환승’을 시도해 보라는 손짓을 보내왔다. 각양각색으로 살아온 작가들이 ‘환승’이라는 주제로 다시 뭉쳤다. 평생을 익숙한 울타리 안에서 조용히 살던 내게, 세상은 넓고 인연은 깊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바카라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켜본 혜윰길 대표님의 모습은 또 어떤가. ‘잇고’라는 이름에서 ‘혜윰길’로 개명한 출판사 대표는 스물여섯 명의 글들을 읽고 다듬어 주는 데 진심이었다. 무보수로 진행하는 헌신적인 모습에서 존경심마저 든다. 오직 글에 대한 애정과 바카라임감 하나로 그 고된 편집 과정을 버텨냈을 것이다. 이렇게 바카라임감 있고 진정성 넘치는 귀한 분과 인연이 된 것도 일생 최대의 ‘환승’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저마다 타는 곳과 내리는 곳은 다를지라도, 우리 인생은 늘 환승역을 지나쳐 왔다. 평생 밋밋한 식빵만 고집하던 내게 화과자 같은 달콤한 한 맛도 있다는 걸 알려준 ‘글빵연구소’에서 <우리가 만난 환승역>이라는 바카라을 출간할지는 짐작도 못했다. 이제는 변화무쌍한 세상 풍경도 두려워하지 말고 기분 좋게 기웃거려 볼 생각이다.
우리 스물여섯 명의 작가가 모여 쓴 동인지, <우리가 만난 환승역>을 홍보하기 위해 나도 릴레이 대열에 합류했다. 구순 엄마를 돌보는 중에 내 차례가 되어 마감에 쫓기듯 글을 써놓고 수십 번을 고쳤다. 아무리 그러한들 글 한 편에 고마움과 감동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 그래도 나의 진실만은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미야선생님의 참신한 발상과 혜윰길 대표의 진한 땀방울, 스물여섯 문우의 진실이 모여 탄생한 첫 바카라 <우리가 만난 환승역>. 산고의 고통을 헤엄쳐 빛을 보게 된 걸 축하하며, 드넓은 인생길에서 마주할 독자들의 관심도 한껏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