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바카라을 그렇게 열심히 읽고 있어요?

by서영수

얼마 전 주말, 더위도 피할 겸 바카라도 읽을 겸 카페에 갔다. 한참 더운 오후 시간이라서 그런지 자리를 잡기 어려웠다. 카페 안은 더위를 피해서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찌어찌해서 어렵게 자리를 구해 앉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바카라을 읽고 있는데, 부부 사이로 보이는 노인 두 분이 자리를 찾다가 내 옆에 누가 가방만 놔둔 것을 보고 그 옆 사람에게 좀 앉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왔다. 물론 나한테도 양해를 구해왔다. 나는 흔쾌히 그러시라고 했다.


여름이라 따닥따닥 붙어 앉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렇게 앉을 수밖에 없다. 가방 주인인 옆 사람은 좀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자리를 전세 낸 것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할머니는 무척 호리호리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바카라과 노트북을 꺼내 할머니는 바카라을 읽고, 할아버지는 바카라을 봐가면서 노트북으로 무슨 작업을 했다.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말았다 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최근 읽고 있는 바카라 속의 문장과 씨름하느라 ‘사이가 좋아 보이는 분들이네. 저 나이에 서로 존댓말을 하니 보기 좋군.’ 이 정도 생각을 하고 계속 바카라을 읽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일단의 손님들이 빠져나가면서 제법 여유가 생기고 카페가 좀 한산해질 무렵, 어느덧 창밖으로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고 있었다. 바카라에서 눈을 떼고 잠시 창밖을 보고 있는데, 이때다 싶었는지 옆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웃으면서 “무슨 바카라을 그렇게 열심히 읽어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자기도 오늘 바카라을 빌렸는데 특이하면서도 아주 재미있다고 했다.


무슨 바카라인가 보니 도미니크 포르티에가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새롭게 그려낸 소설 『종이로 만든 마을』이었다. 디킨슨은 생애 대부분을 자신의 작은 방에서 보내며 시를 썼던 시인이다.


잠시 서로 읽고 있는 바카라을 비교해 보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 같은 도서관에서 바카라을 빌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웃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제 곧 가야 한다고 했다. 오랜 시간 바카라을 읽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짐을 챙겨 남편과 함께 카페를 나섰다. 미소가 아름다웠다.


내 눈길을 끈 건, 읽고 있던 바카라보다 두 사람이 바카라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바카라을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습관이 되지 않으면 바카라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 복잡하고 재밌는 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바카라을 읽다니, 그것도 주말에? 그것도 19세기 미국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에 대해 쓴 바카라을?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것에 머물기 쉬울 텐데, 낯선 작가의 바카라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그 바카라이 재미있다며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뒤에도 각자 바카라을 읽고, 무언가를 쓰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한나절을 보내던 두 사람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카페를 나서면서 문득 나도 나이가 들어 저렇게 바카라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아는 것만 되풀이하기보다 처음 보는 작가의 바카라을 빌리고, 그 바카라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고, 옆자리의 낯선 사람에게 무슨 바카라을 읽느냐고 웃으며 말을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카라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기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늙고 싶었다.


한편으로 그날 읽었던 바카라 내용을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깊이 있는 문장을 쓸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다 보면 조금이라도 그런 문장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좋은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고, 읽고 또 읽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조금 나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어느덧 해는 사라지고 짙은 어둠이 사방에 내리고 있었다. 문득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올랐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카라을 읽었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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