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한 권을 소유하거나 빌리는 것, 손에 바카라을 드는 것, 읽어 나가면서 기계적으로 바카라장을 넘기는 것, 지금 시대에는 대수롭지 않은 모든 동작들이 중세에는 드물고 엄숙하며, 학문이나 재산을 많이 가진 특권층에 국한된 것이었다.”
며칠 전 프랑스의 중세 전문가 소피 카사뉴 브루케의 글을 읽고, 바카라을 읽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독서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바카라이 흔해진 지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지만 스마트폰에 파묻히고 넷플릭스 등 OTT에 빠져 바카라을 점점 읽지 않는다. 절실해야 더 하고 싶어지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 바카라장을 정리하다가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일본 출신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カズオ イシグロ)가 쓴 『남아 있는 나날』이 눈에 띄었다. 처음 샀던 바카라은 이미 누군가에게 주었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다시 산 바카라이다.
잠시 펼쳐보니 이 바카라을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뭐라도 읽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시기마다 읽었던 바카라이 다르니, 가지고 있는 바카라을 보면 그때의 상황이 떠오른다. 내 삶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의 흔적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떻게든 남는 게 인생이다.
바카라은 내용만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카라을 읽었던 시절의 나까지 함께 불러낸다. 오래전에 읽은 바카라을 다시 펼치는 일은 때로 바카라을 다시 읽는 일이면서 동시에 지나간 나를 다시 읽는 일이기도 하다.
이 바카라도 그렇다. 그래서 바카라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다. 내가 살아왔던 삶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별로 바뀐 것 같지 않다. 약간의 맷집이 생겼지만, 그것도 체념이나 포기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불과하니까.
이 바카라을 읽고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품위와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있고, 그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다 갖출 수 없다면 최소한으로 가져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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