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미(美)를 상상하는 능력

by서영수

바카라을 읽을 때 문장이 아름다운지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바카라을 수월하게 읽지 못한다. 멈추고 또 멈추고, 멈춤의 반복!! 문장을 음미하지 않고 쉽게 읽은 바카라은 기억에서 곧 사라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꼼꼼히 읽어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물며 시간에 쫓겨 대충 읽으면 차라리 읽지 않은 것만 못했다. 그런 이유로 바카라을 고르는 데도 점점 신중해진다.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거장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에는 오래 마음에 남는 몇몇 문장이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문장에 매료되었다고 할까. 의미보다 먼저 문장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주인공이 금각사를 보며 혼잣말을 하는 장면. 이 문장 앞에서 나는 마음이 아득해졌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좋으니, 언젠가는 나에게 친근감을 보여주고, 너의 비밀을 알려다오. 너의 아름다움은 지금 당장에라도 확실히 보일 것 같으면서 아직 보이지 않는구나. 내 마음속에 그리는 금각보다도 실물이 훨씬 아름답게 보이도록 해다오. 그리고 만약에 네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면, 어째서 그토록 아름다운가, 어째서 아름다워야 하는가를 말해다오.'


이 글을 읽고 잠시 생각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이 이와 같을 거라고. 손을 뻗으면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쉽게 잡히지는 않고 눈앞에 있으면서도 온전히 알 수 없는, 사랑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현실. 그 애틋하고 애절한 심정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지 내 능력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주인공은 마치 네가 왜 아름다운지 알려 달라면서 공을 금각사에 넘긴다. 그렇다고 그가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다,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질문 자체가 곧 답이라고 생각하니 그가 금각사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껴졌다. 왜 아름다운가를 끝없이 묻는 것 자체가 이미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문장은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문장을 미문(美文)이라고 느끼는가는 문장 자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문장의 미(美)를 상상할 수 있는 내 마음의 능력과 상태에도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같은 문장도 어떤 때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고, 어떤 때에는 한참을 붙잡고 있게 된다. 문장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장의 아름다움은 문장 속에 완성된 채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장과 독자의 마음이 만나는 순간 비로소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실망한다. 좋은 문장을 읽고도 그것이 왜 좋은지, 무엇이 나를 붙잡았는지를 제대로 느끼거나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에도 어느 정도의 능력이 필요하다.


주인공이 금각사의 미에 절망했던 것처럼, 어떤 아름다움은 너무 지극하여 감히 어떤 말이나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말할 수 없을 때,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관념이나 의도에 제대로 닿지 못했다고 느낄 때의 절망감도 비슷하다.


그러나 그런 절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쉽게 이해했다고 결론 내리지 못하게 하고, 한 문장 앞에서 다시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절망 또한 아름다움에 가까이 다가가는 한 방식일 것이다.


다시 『금각사』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


"이때 나에게 분명하게 하나의 자각이 생겼다. 어둠의 세계를 향하여 팔을 크게 벌린 채 기다리면 된다는 것. 머지않아 5월의 꽃들도, 제복을 입은 자들도, 짓궂은 급우들도, 내가 벌리고 있는 팔 안에 들어오리라는 것. 내가 이 세상을 바닥으로부터 쥐어짜서 움켜쥐고 있다는 자각을 지녀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자각은 소년의 긍지가 되기에는 너무도 무거웠다."


한 문장이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아마 나는 바카라을 빨리 읽는 사람은 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추고, 그 안의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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