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ㅡ 문
『문』은 친구를 배반하고 사랑을 선택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는 그 사건 자체를 자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무엇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기보다, 그 일이 지나간 뒤에도 두 사람의 삶에 무엇이 남았는지를 차분하고 건조하게 따라갈 뿐이다.
소설은 친구를 배반했다는 죄의식을 품고 살아가는 남자의 어두운 내면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소스케는 관청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며 아내 오요네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간다. 두 사람에게는 쉽게 말할 수 없는 과거가 있지만, 그것을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세상과 한 걸음 떨어진 채 주어진 일상을 조용히 견디며 살아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소소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눈에 띌 만한 사건은 거의 없다. 처음에는 작가가 왜 제목을 『문』이라고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소스케와 오요네의 가난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따라갈 뿐, 그들이 통과해야 할 어떤 문도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두 사람의 과거가 드러난다. 오요네는 본래 소스케의 친구였던 야스이와 가까운 관계에 있던 사람이었다. 소스케와 오요네는 사랑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으로 친구를 배반하고 가족과 슬롯로부터도 멀어졌다. 사랑을 얻은 대신 이전에 누리던 삶의 넓이를 잃은 것이다. 소스케는 이를 내색하지 않지만 야스이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생활이 죄의식에 짓눌린 불행한 삶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셋집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쓸쓸하지만, 그들의 관계에는 오랫동안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뎌온 사람들만이 지닌 온기가 남아 있다. 과거의 뜨거운 사랑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타다 남은 재 속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매일 같은 도장을 같은 가슴에 찍으며 긴 세월을 질리지도 않고 살아온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일반 슬롯에 흥미를 잃어서가 아니었다. 슬롯가 그들 둘만을 떼어내고 차갑게 등을 돌린 결과일 뿐이었다. 외부를 향해 성장할 여지를 발견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내부를 향해 깊이 뻗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넓이를 잃음과 동시에 깊이를 얻었다.”
소스케와 오요네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슬롯와의 관계는 끊어졌지만, 두 사람은 그만큼 서로에게 깊이 의지하게 되었다.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도 사랑이었고, 세상의 냉대 속에서 견디게 한 것 역시 사랑이었다. 사랑은 그들을 고립된 삶으로 이끈 원인이면서, 동시에 삶을 지탱하게 만든 마지막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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