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을 읽을 때를 떠올리면, 그때는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보였다. 사랑한다고 쓰고도 끝내 그 편지를 찢어버린 사람, 무진을 떠나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던 남자의 마음이었다. 소설이 남자 주인공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 흘러가기 때문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정작 오래 생각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 바로 하 선생이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무진에 사는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하 선생이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했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자신을 데리고 가 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끝내 들어주지 못한 채 다시 서울로 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그 편지에서 그는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하 선생에게 더 오래 남았을 문장은 사랑 고백 뒤에 이어진 말이었을 것 같다.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 선생에게 이 문장은 단순한 사랑 고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진을 떠날 수 있다는 말이었고, 지금과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말이었으며, 누군가 자신을 데려가 줄지도 모른다는 약속처럼 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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