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처음 봤을 때, 인상적이었던 건 준세이 역을 맡은 다케노우치 유타카의 목소리였다. 뚜렷한 감정의 변화 없이, 최대한 절제된 저음의 목소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을 간신히 받아들이려 애쓰는 것처럼 들렸다.
이국에서 다시 만난 아오이는 준세이에게 차갑게 말한다. 자신은 다 잊었다고. 새로 만난 남자와 지금 행복하다고. 그 말 앞에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순간 준세이의 눈빛은 참으로 쓸쓸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준세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그가 마지막 편지에 쓰지 못한, 정말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이야기까지도 읽을 수 있었으리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그때의 감정이다. 살다 보면 끝내 표현하지 못한 채 마음에 묻어두어야 하는 말도 있다.
영화 중반, 준세이가 아오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그의 목소리를 통해 잔잔히 흐른다. 어쩌면 편지란,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내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닿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를 정리하기 위해 쓰는 다짐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지난 시절의 기억을 추억하는 것, 그 기억은 때로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바나나 키친》에서 이렇게 썼다.
"여러 겹으로 덧칠된 추억은 좀처럼 투명해지지 않는다. 끈끈하고 무거운 액체로, 인생의 앙금으로 가라앉는다. 시간이 흐르면 시큼하게 삭아, 애처롭게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역시 추억은 있는 편이 좋다. 애처로우면 애처로울수록 우리들 발자국에 깊이가 생긴다."
아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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