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배터리

시스템 불균일 발전의 법칙

by한유신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오면 우리는 먼저 달라진 것을 찾는다.

화면은 얼마나 커졌는지 카메라는 얼마나 좋아졌는지 기기는 얼마나 얇아졌는지 살펴본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 Z 폴드8과 Z 플립8도 이전보다 얇고 가벼워진 몸체와 접히는 화면과 더 많은 기능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은 이제 전화를 걸기 위한 기기라기보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보고 길을 찾고 돈을 지불하며 인공지능의 도움까지 받는 복합 시스템에 가깝다.


그중 플립7과 플립8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차이가 보인다. 플립8은 플립7보다 펼친 상태의 두께가 6.5밀리미터에서 6.1밀리미터로 줄었고, 무게도 188그램에서 180그램으로 가벼워졌다.

몸체는 더 얇고 가벼워졌지만 배터리 용량은 두 제품 모두 4,300밀리암페어시이며 제시된 최대 동영상 재생시간도 31시간으로 같다.

이 수치만 보고 배터리가 발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더 얇고 가벼운 공간에서 같은 배터리 용량과 사용시간을 유지했다면 내부 설계와 전력효율도 함께 개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사용자가 체감하는 ‘한 번 충전해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가치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화면은 접히고 몸체는 얇아졌다. 인공지능은 더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배터리는 그 기능들을 감당하면서 같은 사용시간을 지키고 있다.

하나의 스마트폰 안에서 구성요소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모든 부분은 같은 속도로 진화하지 않는다


TRIZ에는 시스템 불균일 발전의 법칙이 있다.

기술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복잡할수록 발전속도의 차이는 더 커지고 빠르게 발전한 부분과 상대적으로 뒤처진 부분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기술시스템은 그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시 진화한다.

스마트폰의 화면은 빠르게 발전했다. 크기가 커졌고 해상도가 높아졌으며 이제는 접었다 펼칠 수도 있다.

처리장치는 더 많은 계산을 짧은 시간에 수행하고 카메라는 여러 개의 렌즈와 센서를 사용한다.

통신은 계속 연결되어 있고 인공지능은 기기 안팎에서 더 많은 연산을 요구한다.

이 기능들은 모두 전기를 사용한다.

배터리 용량을 크게 늘리면 오래 사용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이 두꺼워지고 무거워질 수 있다.

스마트폰을 얇고 가볍게 만들면 배터리가 들어갈 공간은 줄어든다.

화면을 더 밝게 만들고 처리성능을 높이면 전력 사용과 발열이 증가할 수 있다.

더 얇아야 하고 더 가벼워야 하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또한 충전하지 않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특성을 높이려 할수록 다른 특성과 충돌하는 것이 스마트폰에서 배터리가 만드는 모순이다.

배터리는 멈춰 있는 구성요소가 아니다. 배터리의 저장능력과 안전성, 충전기술도 계속 발전해 왔다.

다른 구성요소가 요구하는 전력과 기능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늘 부족하게 느껴질 뿐이다.

시스템 불균일 발전은 어떤 부품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각 부분이 발전하는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배터리가 따라가지 못하자 충전기가 변했다

배터리 사용시간을 크게 늘리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찾게 된다.

충전시간을 줄이거나 충전할 수 있는 장소를 늘린다.

여러 기기가 하나의 충전기를 함께 사용하게 한다.


예전에는 휴대전화 제조사와 모델에 따라 충전단자의 형태가 달랐다. 집에 충전기가 여러 개 있어도 새로 산 휴대전화와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충전단자는 점차 USB-C를 중심으로 통합되었고 하나의 충전기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이어폰 등 여러 기기를 충전할 수 있게 되었다.

급속충전은 배터리 용량을 직접 늘리는 대신 충전을 기다리는 시간을 줄였다. USB-C와 USB 전력공급 규격은 기기의 충전 상태에 따라 전압과 전류를 조절하며 빠른 충전을 지원한다.


스마트폰을 살 때마다 충전기를 새로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달라졌다. 충전규격이 통합되면서 기존 충전기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기기와 충전기를 분리해 판매하는 방식도 확대되고 있다.


충전기는 스마트폰 안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스마트폰 밖에서 진화했다.

충전단자는 통일되고 충전속도는 빨라졌으며 보조배터리와 차량용 충전기, 무선충전기처럼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장소도 늘어났다.

배터리가 스마트폰의 다른 기능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자 주변의 충전 시스템이 그 차이를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시스템 불균일 발전에서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다.

뒤처진 구성요소 하나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시스템의 다른 구성요소와 상위시스템까지 함께 변한다.


가장 오래된 기능은 화면 안에 남아 있다

스마트폰에서 가장 빠르게 변한 것이 화면이라면 가장 오래된 방식으로 남아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키보드다.

키보드의 기본적인 입력방식은 타자기 시대부터 이어졌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선택하고 선택한 글자를 순서대로 조합해 문장을 만든다.

컴퓨터에서는 물리적인 자판을 눌렀고 초기 휴대전화에서는 숫자버튼 몇 개로 문자를 입력했다. 천지인 자판은 적은 수의 버튼으로 한글을 입력할 수 있도록 자판을 단순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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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물리적인 키보드는 대부분 사라졌다.

키보드는 디스플레이 안으로 들어갔다.

키의 모양과 위치를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고 한글과 영문, 숫자와 기호를 같은 화면에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키보드라는 물건은 사라졌지만 글자를 하나씩 선택해 입력하는 기본 방식은 남았다.


음성인식이 발전하면 키보드도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말로 검색할 수 있고 메시지를 작성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에게 긴 문장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키보드를 사용한다.

회의 중에 휴대전화에 대고 말하기는 어렵다. 도서관이나 강의실처럼 조용해야 하는 곳에서도 음성입력은 불편하다. 주변 사람에게 내용을 들려주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숫자와 기호를 정확하게 입력하거나 문장의 일부를 세밀하게 고칠 때는 키보드가 더 적절하다.


키보드는 진화하지 못해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입력방식이 모든 상황에서 키보드의 기능을 대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아 있다.

시스템 불균일 발전을 빠른 것과 느린 것의 우열로만 보면 이 부분을 놓치게 된다. 모든 구성요소가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방식이라도 여전히 유용한 기능을 수행한다면 시스템 안에 남는다. 새로운 방식과 오래된 방식이 역할을 나누면서 함께 존재할 수도 있다.


하나의 제품 안에 서로 다른 시대가 산다

최신 스마트폰 안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함께 흐른다.

접히는 화면과 인공지능은 빠르게 새로운 기능을 얻는다. 몸체는 더 얇고 가벼워진다. 배터리는 크기와 무게, 발열과 안전이라는 한계 안에서 그 기능들을 감당한다. 충전기는 배터리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스마트폰 밖에서 더 빠르고 공통된 시스템으로 변한다. 타자기에서 시작된 키보드 입력방식은 화면 안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스마트폰의 다음 혁신이 반드시 더 많은 카메라나 더 큰 화면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배터리를 키우지 않고도 더 오래 사용하는 방법에서 시작될 수 있다.

충전을 별도의 행동으로 느끼지 않도록 주변 환경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식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키보드와 음성, 손짓과 인공지능이 상황에 따라 입력 역할을 나누는 방식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빠르게 발전한 부분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부분은 새로운 모순을 만든다.

오랫동안 남아 있는 부분은 아직 대체되지 않은 필요를 보여준다.

시스템의 다음 진화는 가장 앞서 있는 곳에서만 시작되지 않고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들이 충돌하는 곳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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